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호(1973) (문단 편집) === [[LG 트윈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img.donga.com/5067517.1.jpg|width=100%]]}}} ||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으로 1992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때만해도 유격수였으나 당시 감독 [[이광환]]이 박종호의 어깨가 약하다 판단하고 2루수로 전향시켰다. 그 해 시즌 종료 후 [[김용달]] 타격코치 주도로 [[스위치 히터]] 전환을 시도하였고, 1993년에 좌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원래 스위치 히터를 안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김용달]] 타격코치와 약간 자존심이 상할 마음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너를 마음껏 밀어줄 테니 한 번 바꿔서 하자. 실패하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 너는 따라와라."라고... 하면서 스위치 히터로 전환하게 된 일화가 있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 그 해 2할 6푼 타율에 21도루, 56타점으로 하위타선의 해결사 역할을 하며 같은 팀 [[류지현(야구)|유지현]]과 준수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면서 2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 근데 생각해보면 굉장히 운이 좋은 시즌이었다. 단순히 성적만 보기에는 그다지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기도 하고, 비슷한 시대에 [[박정태]], [[강기웅]], [[이명수(1966)|이명수]] 등[* 각각 '92, '93, '95 골든글러브 수상자이기도 하다.] 타격이 뛰어난 2루수가 많아서 박종호가 골든글러브를 받을 것을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근데 마침 94년도에 이 선수들이 부상으로 풀타임을 못 뛰거나 부진하여 박종호가 받은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완전한 주전 2루수로 안착하나 했는데, 199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성우]]와의 충돌로 인한 손목 부상과 [[방위병]] 복무로 인해 1군 61경기 출장에 그쳤고, 설상가상으로 1996년에는 [[방위병]]의 경기 출장이 전면 금지되면서[* 1995년까지만 해도 방위병은 홈 경기에 한해 출장이 가능했다. 실제로 90년대 프로야구 대표 스타였던 [[양준혁]], [[이종범]], [[김기태(1969)|김기태]]도 이렇게 경기에 출장한 바 있다.] 잔여 기간 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1997년까지 2년 연속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이는 곧 밑에 서술되어 있듯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된 계기가 되고 만다. 거기다 그 당시 LG 내야진은 [[신국환(야구)|신국환]], [[안상준]], [[권용관]] 등 센터 내야 자원이 많았기 때문에 방위 복무와 부상으로 고전했던 박종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셋 다 기대치만큼 못 터져서 결국 시즌이 끝날 때쯤 주전 2루수는 [[이종열]]이었다. 이후 2003년 [[박경수]]를 거액을 들여 데려오는 등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박경수도 미완의 유망주로 남아버렸고, 결과적으로는 [[손주인]]이 오기 전까지 LG의 2루는 15년 넘게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중간에 유지현을 2루수로 보냈지만 이건 부상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이뤄진 포지션 변동이었다. 박종호가 떠나기 전에 해태에서 1억 5천만원 주고 영입한 [[안상준]]은 99년 반짝 활약하고 거품이 빠져 두산으로 [[트레이드]]되었으며 신국환도 97년에 잠깐 반짝했을 뿐, 주전은 커녕 백업을 전전하다가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나마 [[권용관]]이 꾸준하게 선수 생활을 하였으나 주 포지션이 [[유격수]]이기도 하였고, 어디까지나 수비형 내야수라 공격에서는 [[멘도사 라인]] 근처에서 노는 수준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