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종팔 (문단 편집) === IBF 세계 챔피언이 되다 === 이후에 박종팔은 신설된 복싱협회 IBF에 진출한다. 체급은 미들급 바로 윗 체급인 슈퍼 미들급. 당시 IBF는 먼저 설립된 [[세계 복싱 협회|WBA]]나 [[세계 권투 평의회|WBC]]에 비교해 봤을때 명성이나 인지도, 흥행, 그리고 선수기량면 등 모든 면에서 뒤처진 수준이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지만 동양권 선수가 넘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중량급 체급이었다. 박종팔은 세계정상권과의 격차를 고려해 신설된 IBF에 들어갔고, 새롭게 추가된 체급, 슈퍼미들급에 뛰어 들어 결국 해당 체급 초대 챔피언 미국의 머레이 서덜랜드와 타이틀 매치를 치른다. 84년 한국에서 열린 경기에서 경기 초반 한차례 다운을 당했지만 강력한 펀치를 앞세워 4번이나 다운을 뺏어내며 11라운드 KO승을 거두고 월드 챔프에 등극한다. 이후 8차례의 방어전을 성공했고 이때가 가장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파이트 머니의 수익 자체도 엄청나게 많아서 은퇴 이후에 재산이 90억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8차례의 방어전 상대 중 세계 최정상권은 없었지만, 쉽게 볼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일례로 머레이 서덜랜드의 경우 미들급의 강자 중 한 명인 헌즈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판정까지 가는 좋은 경기를 펼친 바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동양권 선수들이 비동양권 선수들과 선천적인 파워를 극복하고 싸운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만난 선수들 중 비교적 난적이었던 린델 홈스나 비니 커토와의 일전 등이 주목할 만한 경기였다. 린델 홈즈와는 한국에서만 두 번 경기를 가졌는데, 첫 번째 경기에서는 크게 고전하다가 경기 중에 일어난 박종팔의 부상으로 경기가 취소되었고, 마지막 방어전인 8차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박종팔이 크게 고전하다가 스플릿 디시전 판정으로 겨우 승리하였다. 린델 홈즈는 이후 박종팔의 타이틀 반납으로 공석이 된 IBF 수퍼미들급 챔피언을 차지하며 활약한다. 비니 커토는 박종팔이 타이틀전에서 두 번을 만나 모두 승리했으며, 이 중 두 번째 경기는 미국 LA에서 열렸는데 이 때의 승리가 한국 복싱의 ''''유일한 미국 원정 타이틀 매치 승리''''이다. 2021년까지 미국 원정 타이틀 매치의 결과는 1승 27패다. 물론 모두 실력에 의한 패배라고 할 수 없으나 대부분이 그러했으며 [[김득구]] 선수의 경우 맨시니와의 일전에서 사망에 이르렀을 정도로 미국원정은 한국에게 그야말로 무덤길이라고 불렸다. 그런데도 경량급이 아닌 중량급에서의 원정 승리였으니 그 가치는 더욱 크다 하겠다. [youtube(Pgebhv-jZ8Q)] 비니 커토와의 2차전. 3라운드에서 다운을 빼앗아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고, 이후 4라운드 시작 직전 비키니 차림의 [[스트리커]] 여성이 링위에 난입해 춤을 추고 심판에게 [[섀도 복싱]]을 하는 해프닝을 통해 잠깐의 휴식을 더 취하는 행운도 따랐다. 경기는 박종팔의 극적인 15회 KO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자진해서 IBF 타이틀을 반납했는데, 박종팔의 경우 IBF에 소속되어 성실히 챔피언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은 IBF 타이틀을 반납하는 상황이 더 나았다. IBF는 앞서 설명했듯이 WBA나 WBC에 비해 모든 면이 떨어졌다. 또 80년대 IBF 챔피언이었던 권순천의 방어전 당시 해당선수가 아니라 다른 수준 낮은 선수를 둔갑시켜 내보낸 경기가 있던 사건은 한국이 IBF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이 대폭 확산된 계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