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일생 (문단 편집) == 초년 시절 == || [[파일:little_park.jpg|width=100%]] || [[파일:박정희.jpg|width=100%]] || || 대구사범학교 시절 || 문경 훈도 시절 || [[일제강점기]]인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구미]]에서 하급 군관인 효력부위[* 정9품. 현재의 소위 ~ 중위(부위는 위관급 장교 정도에 해당) 정도다.]를 지낸 농민 [[박성빈]]과 백남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박정희]] 본인은 4남 2녀 중 막내가 된다. [[백남의]]는 박정희를 임신할 당시 나이가 45살이었고,[* 더구나 시집간 큰딸 귀희는 박정희가 태어나기 열흘 전 딸을 출산한 상태였다.] 하도 가난한 살림에 입이 늘어난다는 것 때문에[* 사실 원래는 그렇게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고, 박성빈이 무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과거도 급제했으니 끗발이 없는 집안은 아니었다. 박성빈이 [[동학 농민 운동|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가 결국에 동학농민운동 자체가 실패로 끝나면서 벼슬길은 사실상 쫑나게 되었고, 집안으로부터도 의절당하였으며 이후로도 조선이 일제에 병합 당하면서 세상에 나갈 기회가 더 없어졌기 때문에 겨우겨우 먹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배 속의 아이를 떼어내기 위해 [[간장]]을 끓여 한 사발 원샷한다든가 언덕에서 일부러 굴러떨어지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실패하고 박정희는 그대로 태어났다. 한편에선 부친이 나이 불혹이 훌쩍 넘어서[* 박정희가 태어날 당시 부친 박성빈의 나이는 46세였다.] 태어난 박정희를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상기된 낙태 시도는 기저에는 물론 곤궁한 살림살이가 주된 이유였겠지만, 이러한 이유도 있을 수도 있다. 태중에서 워낙 고생한 탓인지 박정희는 당시로선 훤칠한 장신인 아버지나 형들과 비교해 성인이 되어서도 왜소한 체격을 가지게 되었다. 어려운 사정에서도 박정희를 보통학교로 내보냈기에 집안에서 박성희와 같이 근대식 교육을 받은 2명 중 1명이었으며,[* 사실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일반 조선인들은 가정형편 때문에 자녀 전부를 학교에 내보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45년 문맹률 통계에서 문맹률이 78%로 나왔던 것이 그 증거.] 1932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 현 [[경북대학교/학부/사범대학|경북대학교 사범대학]]으로 통합. 당시 초등교원양성기관은 고급보통학교(중고등학교) 급이었고 1940년대 중반에가서 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대학교는 전국적으로 통폐합되면서 승격된 것이다.]에 응시하기도 했다.[* 당시 [[박정희]] 집안은 가난해 학비를 댈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처음에는 진학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미공립보통학교의 담임과 교장이 부모를 설득해 응시하게 되었다.] 어머니 [[백남의]]는 박정희가 "합격하고 진학을 못 하면 한이 생긴다"고 하여 불합격을 빌었지만 1932년 4월 박정희는 정원 100명 중 51등으로 합격했고, 대구사범학교에 제4기생으로 진학하였다. 대구사범 시절에는 대구 시내 기숙사에서 등·하교하였고, 품행 평가에서 '양(良)'이 4번, '가(可)'가 1번이었지만 '군사 체육' 관련 교과목의 성적은 뛰어났다고 한다.[* 이 성적표는 [[박정희]] 집권 기간에는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8012270389|공개 금지였다]].] 1937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4월 문경공립보통학교 [[초등교사|훈도]])로 부임하여 4학년을 맡았다. 이렇게 학교 선생 일을 하고 있던 박정희는 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의 간청으로, 19세이던 [[1936년]]에 16세의 [[김호남]]과 결혼을 했고, 이듬해에 딸 [[박재옥]]이 태어났다. 그러나 자유연애로 결혼한 것이 아닌 순전히 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정략결혼인 데다가 박정희가 김호남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기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3696|김호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