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여담 (문단 편집) == 개인적 면모 == * 엄청난 [[애연가]]였다고 한다.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날에는 지프차 안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대통령 집권 이후 인기리에 방영되던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담배]]가 나올 때마다 담배를 물은 데다[* 정확히는 주연인 [[최불암]]이 드라마에서 회차당 담배를 네 번 피우는데, 이 때 박정희도 같이 피웠다고 한다. 그래서 육영수 여사가 직접 최불암에게 전화를 걸어 담배를 적당히 피워주십사 요청했고 그 다음 녹화분부터는 흡연 횟수가 회차당 1회로 줄었다고 한다.] [[월남파병]]을 결정하기 전에는 [[http://m.cnews.co.kr/mobile/read.jsp?idxno=201504080750148320893|담배 4갑을 하루 저녁에 피울 정도였다]]. * 미국의 밴스 특사는 [[린든 B. 존슨|존슨 대통령]]에게 "박정희는 종종 [[특수폭행|재떨이로 영부인과 참모들을 때린다]]"고 하면서 "위험하고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보고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6&aid=0000030817|#]] * 교사 생활을 3년 했고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아서 문예적인 소양이 깊었다. 시와 일기, 편지같은 글쓰기와 [[풍금]], [[클라리넷]], [[트럼펫]] 등 악기도 두루 다루었다.[* [[새마을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단, 작곡은 음악을 전공한 셋째딸 [[박근령]]이 "아버지의 요청으로 내가 작곡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반면, "풍금을 켜면서 직접 작곡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정희가 풍금 코드를 기반으로 노래를 만들고, 박근령이 곡을 다듬고 악보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도 곧잘 그렸으며 [[서예]]에도 취미가 있었다. 서예 전문가들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명필로 [[이승만]]을 꼽지만, 가장 값을 비싸게 치는 것은 박정희의 서체라고 한다. 군인 출신답게 날카로운 판본체에 가까운 글씨를 고수했으며, 현재는 바뀐 이전의 [[경복궁 광화문|광화문]] 현판도 그가 손수 쓴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에서 되찾아온 소전 [[손재형]]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고 [[승마]]나 [[검도]], [[국궁]]을 즐기기도 했었다. * 박정희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는 [[새마을 노래]] 말고도 유신시절에 [[프로파간다]]를 위해 만들었던 [[나의 조국]] 등이 있다. 그런데 이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를 직접 들어보면 알겠지만, [[엔카]]풍 음계를 갖다 쓴 왜색가요나 다름없다. 박정희가 왜색을 몰아낸다면서 금지곡들을 선정한 시대였다는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일본쪽에서 노래를 배운 사람이니 이건 이거대로 뭐라하기에는 애매하긴 하다. * 박정희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도 반말을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관이나 참모들은 물론 청와대의 이발사, 청소부 등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고 한다. 박정희 본인이 군인 출신인 데다가, 당시 사회는 평범한 사기업에서도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는 서슴없이 반말을 하는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확실히 그가 반말을 한 것으로 증언으로 알려진 인물은 질서(조카사위)인 [[김종필]]과 고향 후배인 [[김재규]], 격의 없이 친했던 [[김계원]][* 김계원과 박정희는 서로 키를 맞대어 보고 누가 더 작은지 옥신각신할 정도로 어린이들처럼 노는 사이였다고. 김계원에 따르면 박정희, 김계원, 김재규는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정도의 최측근뿐이었고 당연히 권력실세인 경우가 많았다.[* 저 자리를 역임했던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박정희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니 사적으로 친분이 깊어서 반말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저 반말이라는 어투의 수위도 막대하는 어투가 아니라 "임자 생각은 어때?", "[[김형욱]]이처럼 사람 막 안패도 되니까 [[김계원|임자]]가 해!" 정도였다고. 다만 고향 후배인 김재규에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공식석상이나 참모들 앞에서조차 거리낌없이 막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습관들이 [[10.26 사태]]의 발화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심지어 [[차지철]]에게도 존대를 했다고 한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차지철은 박정희와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였거니와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박 대통령과도 철저히 상사-부하의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박정희 역시 차지철에게 말을 걸 때 "차 실장 생각은 어떻소?"와 같은 식의 어투를 유지했다고 한다.][*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으나 성격이 아이 같은 면이 있고, 호색하지 않고, 군부 인사들 중엔 그나마 돈을 덜 밝혀서 박정희와 육영수의 총애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차지철의 면모를 극대화해서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 [[제4공화국(드라마)]]에서 이대근이 연기한 차지철이다.] 다만 남은 육성 자료들을 확인해 보면 1인칭은 거의 항상 '나'였고 대통령 선서를 존댓말로 개정할 때도 그 부분은 고치지 않았다. * 일상생활이 검소했다고 한다. 비름나물이나 두부 같은 향토음식을 좋아했다고 하며[*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0232824|#]][[http://news.ichannela.com/tv/bluehouse25/hotclip/3/00/20140830/66111599/1|#]] ], 허리띠가 해져도 모르다가 청와대 전속 이발사가 알려줘서야 알아차렸다거나,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겨울 난방도 적정 온도를 유지했다는 증언도 있었으며, 변기물을 아끼려 변기 뒷칸에 벽돌을 놓았었다는 것.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배인 생활습관의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해외의 한국 근현대사 관련 학자나 정치학자들도 박정희의 생활이 검소했다고 평가했다.[[http://www.imaeil.com/view/m/?news_id=2716&yy=2014#cb|출처]][[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2&mcate=M1001&nNewsNumb=20141015899&nidx=15900|#]] 하지만 [[10.26|사망 당시]] 술자리를 보면 [[소갈비]], [[장어]], [[송이]], [[전복]] 등의 고급 [[술안주]]를 차려놓고 [[심수봉|연예인]]까지 불러 유흥을 즐긴 점을 감안하면 검소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으므로,[[http://m.blog.daum.net/syp8861/18343204|출처]][* 경제학자 [[장하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 [[김재규|부하]]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양주가 굉장히 좋은 술인 줄 알았어요. [[영국]]에 와서 보니 가장 값싼 [[위스키]] 중 하나더군요. 어느 나라 독재자가 시바스 리갈 같은 싼 술을 마십니까?”[[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90623|#]]][* 다만 장하준의 말대로 시바스 리갈이 지금에야 흔하디 흔하고 평범한 술이지만, 그의 주장에는 오류가 있다. 박정희 시대 당시 위스키의 위상을 현재와 대입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시바스 리갈 이나 조니워커 같은 위스키는 굉장히 구하기 힘들었고, 박정희는 외국에서 구한 [[로얄 살루트(위스키)|로얄 살루트]]를 굉장히 아껴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원액이 아예 없는 도라지 위스키나 원액을 아주 찔끔 넣은 [[대중 양주]]가 판을 치고 시바스리갈이나 조니워커 위스키 같은 양주는 사치품으로 가혹한 세금을 매기던 시절이기에 지금의 시바스리갈 12년의 위상과 1970년대 시바스리갈 12년의 위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지금에야 [[시바스 리갈]] 12년은 코스트코나 대형마트, 편의점에서 4만원~5만원대면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널렸고, 로얄 살루트도 면세점에서 싸게 구하거나 코스트코에서 20만원대에 팔고 있으니 호기심으로나 장식용으로 눈 딱 한번 감고 사볼수 있는 정도이다. 여의치 않으면 로얄 살루트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사오면 10만원대에 21년을 살 수 있다. 지금에야 싱글몰트 위스키 고숙성은 백만원, 천만원이 넘어가는 세상이고, 박정희가 먹었다는 로얄살루트나 시바스리갈이 코스트코나 마트에 쌓아놓고 파는 세상이지만, 박정희 시대의 시바스 리갈 12년과 로얄 살루트는 위상 자체가 아예 달랐으니(여전히 로얄 살루트는 발렌타인 30, 조니워커 블루와 함께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로 꼽히고, 박정희의 영향으로 2020년대 아직까지 시바스 리갈이 고급 술인줄 아는 노년층이 있긴 하지만) "세상에 어느 독재자가 값싼 시바스리갈을 마시냐"라는 장하준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와 관련해,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검소하던 박정희가 사치스러워졌다"가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보통 사람도 가끔씩은 비싼 거 먹는데 그냥 대통령도 아니고 무소불위의 독재자씩이나 되어서 아랫사람들과 연회를 갖는 데도 싸구려 술과 안주를 먹으며 궁상떠는 일도 우스운 일이고, 증언이 꽤 많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평소 검소했다는 것 자체는 맞아 보인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러한 모습이 잘 반영되었는데 김재규와 술을 먹는 장면에서 막걸리를 먹다가 예전같지 않다며 한 모금만 먹고 말아버린다던가 영화 후반부에는 차지철과 비싼 양주를 먹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간성을 잃고 사치스러워지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졌다.] 개인의 기호나 취향은 성장기나 젊은 시절에 굳어지는데 성장배경을 보면 사치스러울래야 사치스럽기가 힘든 성장배경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을 [[아비투스]]라고 부르는데,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사회적 계급이 크게 올라가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생활 방식이나 어려서 먹던 음식 등을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릴 때 겪은 가난의 영향으로 인해 극도로 검소한 생활이 아예 몸에 배어서 딱히 의식적으로 아끼려 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 >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은 "육 여사가 죽은 뒤 박 대통령의 주변에 '인의 장막'이 둘러쳐져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주변의 많은 인사들이 그의 '실정'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박정희'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면모는 유신체제 출범 뒤 그 '물'이 많이 빠졌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증언이다. 이 무렵부터 그의 술자리에는 막걸리보다 '시바스 리갈'이 자주 올라왔고, 여자들과의 추문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물구나무 서기와 검도로 체력을 단련했던 그가 골프에 푹 빠진 것도 이 무렵부터다. 박 대통령이 '장학생'으로 관리하던 몇몇 기자들과 사이가 틀어진 것도 이 때다. 박 대통령은 1978년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에서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한 일간지 기자의 이마를 들이받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독재권력이 종말에 가까울수록 ‘인간 박정희’도 서서히 망가져 갔던 것이다. * [[조갑제]]의 말에 의하면, 박정희는 [[여자]]를 보는 눈이 꽤 높고 까다로웠다고 한다. 보통 키가 크고 얼굴이 긴 미인형 여자를 좋아했고, 자신처럼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新女性)과 결혼하길 원했다고. 실제로 결혼을 전제로 동거했던 前 내연녀 [[이현란]]과 후처 [[육영수]]가 그런 스타일이었고, [[10.26 사건]] 당시 박정희의 술시중을 들던 여대생 [[신재순]]도 키가 상당히 컸다. 전처였던 [[김호남]]은 전통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이였기에 [[백남의|시어머니]]의 마음에는 들었으나, 박정희의 [[이상형]]은 아니었기에 박정희는 김호남과의 결혼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