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 (문단 편집) == 생애 == [[1962년]] [[11월 19일]],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금촌초등학교, 문산동중학교, [[동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6년간 수석을 놓치지 않을 만큼 머리가 좋았지만, 중학교 입학 전 부친 사업이 기울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거나 재수를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열이 있던 모친의 권유로 문산동중학교 야간부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탁구에서 재능을 발견해 동인천고에 탁구부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경기·인천 종합대회에서 개인전 3등,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할만큼 탁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탁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진하기 시작한 결과 동기들 중 유일하게 서울대학교에 합격한다 198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생물학과에 진학하였고, 1986년 학부를 졸업한 후 서울대 자연대학원 미생물학과에 진학, 유전공학자를 꿈꿨다. 졸업 후 토플영어강사로 활동하다가 1994년 12월 강남구에 본인의 이름을 내세워 박정어학원을 설립했다. 당시 유학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토플, GRE 시험을 대비하는 학원이었다. 당시에는 토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설 학원이 전무했었다. 당시 성인 영어 학원은 전부 회화 일색이었고, 유학준비생을 위한 토플 강좌는 서울의 일부 명문대에 특강 형식으로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박정어학원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를 각각의 강사가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을 처음 시도한다. 지금은 많은 어학원이 수업을 분업화해 진행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다른 어학원에게선 찾을 수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율화가 이뤄지며 유학생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토플 성적이 필수였고, 특히 97년 IMF가 터지면서 강남의 부유층 자제들이 유학을 선호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박정어학원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박정어학원 상당수의 수강생들이 미국 하버드, MIT 등 명문대에 합격했다. 90년대 당시, 국내에서 해외로 유학가는 학생들의 약 90%를 배출할 만큼 어학원 업계에선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박정어학원을 운영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토플 책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처음 수강 신청해 당황했지만, 학원 곳곳에 플랜카드를 붙여 학생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양해를 구해 지정 좌석을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박정 원장이 정치에 관심을 두었고, 실제 2004년 총선에 첫 출마를 준비하면서 박정어학원 경영에 소홀해진 점과, 2001년 설립된 해커스 어학원[* 해커스는 충남대 영문과 교수였던 [[조동인|데이비드 조]] 원장이 직접 만든 교재, 강사들을 동원해 실제 기출된 문제들을 복원하여 만들어 높은 적중률을 보인 부교재, 그리고 국내외 명문대 출신으로 구성된 뛰어난 강사진, 체계적 커리큘럼 등 2000년대 새로운 어학원 강자로 부상했다.]등이 급성장하면서 박정어학원의 명성은 90년대와 비교해 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