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영희(작곡가) (문단 편집) === 국악관현악곡 === * '''온누리에 가득하여...비워지니... (2007)''' > 대한민국 국립극장 국립관현악단에 헌정함 [br][br] 현대의 한국인 작곡가로서 노자의 도덕경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열린 허공(虛空)으로의 침전(沈澱)’은 이미 많은 나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를 향해 내 창작의 문을 연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요, 열린 허공으로의 침전이 아닌 모험적인 진입(進入)이다. [br][br] 한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나는 쉴 새 없이 배우고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점점 더 실체적이고 치밀해졌다. 그리고 모든 배운 것은 허공을 향해 열려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br][br] 한국의 전통악기를 통한 음악은 항상 앙상블 음악이었으며 오케스트라로서 전통악기들의 복합화와 다양화는 신 시대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도(道)에 이르기 위해 물이 되어 거침없이 흘러야 할 때 필요한 가득함(充滿)으로 비유하고 싶다. [br][br] 날숨(呼)과 들숨(吸): 실체(實體)와 공명(共鳴)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불어서 나오는 음(音)뿐 아니라 모든 음악의 기본이다. 모든 음은 소리로서 공명하고 이 모든 소리는 반향(反響)을 그치면 사라진다. 나는 진정 이에 대한 경외심으로 단 하나의 음의 생성도 중단하거나 억제하거나 그 소멸을 강제하지 않았다. 이것이 곧 우리 음악의 전통적인 예법(禮法)이기도 하다. [br][br] 만일 ‚자신을 비움’이 - 도교(道敎)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신비주의가 그렇듯이 - 인간의 내면적이고 깊은 공간(마음)의 ‚채워짐(充滿)’을 얻는 것이라면, 들숨은 성장(成長)이요 날숨은 소멸(消滅)을 의미한다. 자신을 비우면서, 겸허함 속에서 점점 더 낮아지는 마음,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 약 1260-1327)는 높고 낮음은 하나라고 했다. [br][br] 나는 처음부터 열려 있는 소리의 공간에 가장 높은 음(하늘)과 가장 낮은 음(땅)을 수직으로 이어주는 음악(音樂)을 만든다. 소리공간은 채워지지 않으며 서서히 이 공명의 중심으로부터 수평의 음이 움직이며 흐르고 악기는 마치 인간의 목소리처럼 노래한다. [br][br] 한국 전통악기들의 소리 폭이 보편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의 목소리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반해 유럽이나 서양의 악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능한 한 그 소리 폭을 넓히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그랜드 피아노이다. 극도의 낮은음에서부터 극도의 높은음까지 모든 음을 ‚소유(所有)’함으로서 그랜드 피아노는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음역(音域)을 구사한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전통 악기들은 그 흐르는 울림으로 공간에 여유를 남긴다. 이런 울림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칭송이며 음(音)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서 여운이다. 울림이 사라지면서 생성되는 무음(無音)의 공간, 이 정적(靜寂) 안에서 귀 기우려 듣는 사람은 그 채워짐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듣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