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영수(법조인) (문단 편집) === 검사 === [[수원지방검찰청]]에 있을 때,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의 주임검사로서 수사를 지휘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강력 및 특수 검사로 [[조폭]]들을 소탕했다. 2001년 6월,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목포에서 향판 출신 변호사로 유명한 아버지 박창택과 DJ 정권의 실세인 목포 출신 [[박지원]]과의 친분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2년 2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정권의 지원을 받아 요직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의제였던 재벌개혁을 앞장서서 진두 지휘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서울지검 2차장에 임명되었고 1년만인 2003년 3월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이 되었다. 이시절 [[SK그룹]] 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수사를 지휘하여 '''[[최태원]] 회장을 수사'''하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04년 6월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가 되더니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인 2005년 4월 검찰의 꽃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되었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인 2006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여 '''[[정몽구]] 회장을 구속 기소'''하면서 다시 한번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를 지휘 했을 때 그 아래의 수사기획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중수1과장이 특검 임명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최재경]] 수석이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 말기에도 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2007년 4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고, 반년만인 2007년 11월 검찰의 핵심 요직인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후 [[노무현 자살 사건|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과잉수사의 책임을 지고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직하고 후배인 [[김준규]]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관례에 따라 퇴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영수는 퇴임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자신이 [[이명박 정부]]의 압박에 의해 퇴진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https://v.daum.net/v/20090116230101820|2009년 1월 1일자 한겨레]]. 이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민주당 지지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이명박 정부]]를 맹비난하는 등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다. 이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맞물려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당시 사분오열되어 있던 친노 세력들이 화력을 모아 [[이명박 정부]]를 맹비난하며 재결집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