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열 (문단 편집) == 기타 ==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가 다뤄진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인만큼 단순한 연애담 정도로 묘사됐다. * 워낙 성격이 불같고 강직해서 북한에 있을 때도 당국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박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 독립운동 자체가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일이라 보통 성격으로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 [[1955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식에서 당시 조국 전선의 일원이자 평화위원회 서기장이었던 최성환과 다툼이 있었는데 최성환은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건대 박열은 이북 생활에 불만이 많았지만 [[김일성]]의 눈밖에 날 행동은 하지 않았던 듯하다. 일설에 따르면 김일성이 위로 차원에서 차려 준 연회에서 납북·월북자들이 희희낙락하는 게 꼴보기 싫었고 결국 그 사람들과 시비가 붙자 [[참교육|두드려 팼다]]는 이야기도 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42100209203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2-04-21&officeId=00020&pageNo=3&printNo=12433&publishType=00020|#]] *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시]]에는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http://www.parkyeol.com/|#]] 박열의 생가도 복원했고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본래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는 주흘산 근처의 박열 집안의 선산에 있었는데 기념관을 세우면서 현 위치로 이장했다. * 박열과 2번째 아내 장의숙([[1947년]] 결혼, [[1976년]] 사망) 사이에 낳은 자녀들은 1남 1녀가 있는데 아들 박영일은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육군 예비역 장성 출신으로 준장까지 지냈으며 [[재일교포]] 출신으로는 [[육군사관학교]] 최초 졸업자라고 한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33000099207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3-30&officeId=00009&pageNo=7&printNo=1555&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사]]) 장의숙의 회고에 따르면 박열은 [[재혼]]한 뒤에도 후미코의 기일에는 집에서 묵상하며 그녀를 추모했다. 한편 북한에 간 뒤 박열이 그곳에서 다시 재혼했는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 박영일이 육군사관학교에 임관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박열이 납북된 후 장의숙은 북한에 있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서 아들의 장래에 관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답신이 올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보냈던 것인데 뜻밖에도 북에 있는 박열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답장에는 ''''아들을 나라에 바쳐라''''라는 말이 적혀 있었으며 이를 본 장의숙은 박영일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아들을 나라에 바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영일은 후에 이 편지를 보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임관, 준장으로 예편했다. * 소설가 [[김별아]]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주인공으로 열애 (박열의 사랑) (2009) 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 유영식 감독의 영화 [[아나키스트(영화)|아나키스트]](2000)의 세르게이([[장동건]])와 가네코([[예지원]])는 각각 박열 열사와 가네코 후미코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 박열의 인생을 내용으로 [[이준익]]이 감독하고 [[이제훈]]이 주연한 [[박열(영화)|동명의 영화]]가 2017년 6월 28일에 개봉했다. [[김별아]]의 소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2021년 [[박열(뮤지컬)|동명의 뮤지컬]]이 초연했다. * [[사이비 종교]] [[십계석국총회]] 출신이자 래퍼 출신인[[https://m.bugs.co.kr/artist/80020451?_redir=n|#]]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사 박동신이 자신이 독립운동가 박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다가[[http://usmsori.com/agora24/5799|#1]][[http://abdurraouf.blogspot.com/2018/09/1986-4-15-28-12-2009-12-30-8.html|#2]] 진짜 박열의 후손들이 없는 사실을 왜 지어내냐고 항의하자 갑자기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자신보고 박열의 후손이라고 한 사람들에게 고소를 걸겠다며 과민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https://namu.wiki/diff/%EB%AC%B4%EC%8A%AC%EB%A6%BC/%EB%AA%A9%EB%A1%9D?rev=758&oldrev=757|#]] 2009년에는 자신이 [[이명박]]과 [[뉴라이트]]의 타겟이 되어 협박 추궁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면[[https://theworldeveryonehappy.tistory.com/40|#]] 그냥 생각 없는 사람이 허풍떠는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3월 10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나는 승리자다 - 제국을 뒤흔든 사나이'라는 제하에 주인공으로 소개되었다. 이야기는 그가 [[3.1 운동]] 당시에 독립선언서를 나눠주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며 주제가 주제인 만큼 앞서 소개된 이제훈 주연의 영화 장면들도 자료화면으로 등장했고,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문창 이사[* 1927년생으로, 생전 박열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와 큰아들 박영일의 인터뷰도 함께 소개되었다. 또 방송 중간에 [[관동대학살]]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는데 박열의 생애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에 더해 [[안양시]] 소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꼬꼬무 제작진 앞으로 편지를 보내 방송을 통해서 관동대학살에 대해 꼭 자세히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초등학생들의 편지가 방송 말미에서 소개되었다.] [[https://youtu.be/_0FhaAHdCUc|#]]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