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세당 (문단 편집) == 사상 == 박세당의 근본 사상에 대해서는 유학의 근본 정신을 추구했다는 견해가 있고, 주자학은 물론 유학 자체에 회의해 [[노자|노]][[장자|장]]학(老莊學)으로 흐른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박세당이 당시 조선의 통치 이념인 [[주자학]]을 비판하고 [[중국]] 중심적 학문 태도에 회의적이었다고 보는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반주자학자보다는 탈주자학자(脫朱子學者)로 보는 입장도 대두되고 있으며, 양명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박세당은 당시의 학자들이 꺼린 [[도가]] 사상(道家思想)에 깊은 관심을 보여 스스로 노장서(老莊書)에 탐닉하면 되돌아올 줄 모르고 심취하게 된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이러한 학문 경향을 지니게 된 배경에는 젊었을 때 지녔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개혁]]적 사고 때문이었고 백성의 생활 안정과 국가 보위에 있어서 [[차별]]을 본질로 하는 [[유가(제자백가)|유가]] 사상(儒家思想)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도가 사상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당시 [[유교]]를 국교로 하던 조선에서 많은 비난을 당했다. 당시 농업 기술에 대해서 다룬 '색경'이 포함된 서계집의 저자이며 특히 색경 때문에 초기 실학자(중농주의)로 분류되는 일이 많은 인물. 그 유명한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다. 농사를 부끄럽다 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부끄럽지 않으냐?"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각주] [[분류:조선의 문관]][[분류:소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1629년 출생]][[분류:1703년 사망]][[분류:반남 박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