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상철 (문단 편집) == 생애 == 가수가 되기 위한 상경과 실패 후 귀향, 그리고 다시 상경을 반복하여 스타로 성공한 인간승리 수준의 케이스로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고교 졸업 직후 19살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서울특별시]]에 상경한 후 미장이 일과 공장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았는데, 충무로에서 만난 작곡가에게 천만 원[* 1987년과 1988년 사이의 일로, 당시 천만 원이면, 지방에 작지 않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을 주면 정식 가수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유혹으로 사기를 당하고[* 물론 아무것도 안 해준 건 아니고, 당대 히트곡들을 부르게 해서 메들리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내줬다고 한다. 그러나 1,000만원을 제작비로 썼다기엔 지나치게 부족한 퀄리티이기도 한 데다가 자기 곡을 준 게 아니니 누가 봐도 사기였다.], 거의 거지꼴이 돼서 충무로 지역 내의 경비가 허술했던 건물이나 [[서울역]], [[구로역]] 같은 [[지하철역]]들에서 노숙을 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살다가, 우연히 만난 한 중년 노숙자의 말[* "나는 사업이 망해 빚도 있고 늙어 다시 돌아갈 수 없으나, 자네가 빚이 있나 뭐가 있나? 자네는 젊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했다고 한다.]에 감화되어 다시 새롭게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향 [[삼척시]]로 [[귀향]]해 돈을 벌어 가수의 꿈에 재도전하겠다는 목적으로, 미용 일을 배워 [[미용사]]가 되어 [[미용실]]을 열어 돈을 벌면서 꿈을 꾸던 중 1993년 강원도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여 가수 [[유열(가수)|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노래로 전체 1등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다시 [[가수]]의 길로 들어설 동기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 미용실까지 유명해지면서, 그때부터 '노래하는 [[미용사]]라는 기믹을 밀기 위해서 일부러 머리를 길게 길러 장발 스타일을 유지하기 시작하였고, 정식 음반으로 데뷔를 한 30대 중반까지 [[장발]]을 유지하였다.[* 1집이 큰 인기를 못 얻어 [[가수]]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적어 [[재연배우]]와 [[리포터]] 일을 시작하게 되자 그때 돼서야 다시 잘랐다.][* 2005년에 발매된 무조건의 앨범 표지를 보면 그때부터 자른 걸 알 수 있다. 근데 그때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했을 때였다. [[장윤정]]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연기한 적도 있다.] 그 후에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 인맥으로 기획사를 만나게 되어, [[2000년]] 1집 부메랑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사정은 안 좋아 [[금호동(서울)|금호동]] 옥탑방에 월세를 살며 [[재연배우]]나 [[리포터]] 일을 부업으로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에 발표한 '자옥아'가 2003년부터 히트를 치면서 먹고 살만해지고, '무조건'의 대히트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전국노래자랑]]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 이전에 [[미용사]][*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삼척)|남양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을 차렸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라는 미용실은 존재한다. 또한 이발은 잘 못 했다고 한다.],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이 날 부른 노래는 [[유열(가수)|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 였다. 아울러서 같은 해 연말결선에도 같은 곡으로 나왔다. ||<-4>[youtube(PK7CqLjNNJU)]|| ||<-4> {{{#101010 전국노래자랑 삼척시 편에 출연한 박상철}}}[* 물론 이때는 초대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박상철 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 ||<-4>[youtube(55A9AaiHHGA)]|| ||<-4> {{{#101010 전국노래자랑 1993 연말결선에 출연한 박상철}}}[* 14분 19초부터 나온다.] || 과거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나 [[TV는 사랑을 싣고]] 등 재연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었다.[* 이건 [[장윤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워낙 당시 인기가 높았던 관계로, [[장윤정]]의 '어머나'가 처음 히트 치던 시점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서프라이즈]] 배우가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라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많았다.] 박상철 역시 '자옥아'로 방송 나올 때 서프라이즈 배우를 계속하던 시기라, 서프라이즈 배우가 본업이고 가수 겸업을 하는 걸로 오해받기도 했다. 두 사람 다 서프라이즈 [[재연배우]] 활동 이전 방송 활동은 많이 해 왔지만, 그 때는 워낙 [[무명#s-2]]들이라서 일반인들 대부분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304031548141|링크]]. 나중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피소드/2018년#s-3|2018년 1월 21일 자 800화 특집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카메오]] 출연하였다. [[MBN]]의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146회에도 출연했다.[* 이때 당시 본인의 나이보다 5살 더 많게(자막 상 세는나이로 나와 당시 박상철의 나이는 48살이었는데 재연극에서는 53살로) 나왔으며, 가수 지망생이라며 소개될 때 부르는 노래나 차 안에서 재생한 노래들 또한 각각 노래방과 황진이였다.] 2집 나오기 이전 시기까지 3년 가까이 살던 옥탑방 시기에, 자신을 아들처럼 챙겨주던 집주인 부부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아 16년 만에 만나기도 하였다. 그를 아들처럼 생각한데다가, 적극적이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던 그들[* 집주인 부부 중 부인의 경우는 당시 방송분에서도 박상철 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만난 [[김용만]]에게도 '용만아'라고 [[반말]]로 부르는 등 상당히 적극적이고 살가운 성격임을 보여주었다. 당시 77세였는데, 그녀는 심지어 60대에 큰 병으로 3년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병력을 밝힌 이유는, 사실 박상철이 그 동안 한 번도 안 찾은 게 아니라 과거에 직접 두 번이나 집에 찾아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못 만났었고 그 이후 동네 재건축[* 그 동네 전체에 대형 아파트촌이 들어섰는데, 옥탑방 집 건물이 있던 땅에는 [[대형교회]]가 들어섰다.]으로 이사 가서 찾을 수 없어 방송에 의뢰한 거였는데, 이 얘기를 하며 박상철이 '어머니 당시에 왜 계속 집에 안 계셨냐'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박상철이 처음 장발로 들어왔을 때를 회상하며 "깡패 새끼인 줄 알고 놀랐다"거나 "노래연습한다고 시끄럽게 해싸서 고만 하라 했다"라는 등 약간 투박한 말투를 썼지만, "(머리는 그래도) 알고보니 양반처럼 점잖았던 아이었다"거나 시끄럽다고는 했으나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니 막지 못해 그가 연습할 때 "화장실에 숨었다"라고 하는 등 정이 많고 따뜻한 품성을 가졌음을 보여줬다. 사실 만나자마자도 박상철을 바로 끌어안고 '니 얼마나 고생했나', '니 잘 돼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라며 엉엉 울었다.][* 남편의 경우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과거 회상에서 나온 내용으로는 집주인으로의 갑질은 커녕, 박상철이 불편함을 호소하면 바로바로 해결해 주려고 나서는 등 역시 부인처럼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옥탑방인 박상철의 집 [[화장실]]에 수압 부족으로 수도가 잘 안 나오자마자 잘 나오게 모터펌프를 바로 설치해 주었고, '항상 상철이 잘 되라고 기도했다'라고 말할 만큼 선하신 분이었다.]은, 당시 박상철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로 부르게 하고 챙겨주어, 평소 밑반찬이나 국을 자주 만들어 주었고, 심지어 종종 술상까지 차려주며 셋이 술을 같이 마시는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떡국]]을 자주 끓여줬는데, 상당히 맛있게 끓여서 박상철이 못 뵌 지 15년간 떡국만 보면 두 사람이 생각났다며, 그 떡국의 정을 잊지 못하여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 걸핏하면 [[가정폭력]]을 일삼아 어머니가 가출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유년기 가정 환경이 나빴던 박상철에게는 제2의 부모와도 같던 분들이었던 것. 이때 박상철은 자신의 친부모와 달리 금슬이 좋은 이 부부에게서 난생 처음 가족의 정을 느꼈다고 한다. 2019년에는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다. 2020년에는 [[tvN]] <[[노랫말싸미]]>에 출연했다. 2020년 5월 13일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한 아침]] 게스트로 출연했다. 최근 들어 목이 많이 손상된 상태로 흥이 나는 [[노래]]를 과도하게 부른 것인지 [[허스키 보이스]]를 넘어서 건조한 사막 또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땅 느낌이 난다. 평소에 개사를 많이 해서 목에 부담을 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유의 건방지거나 조금 날아가는 엇박자를 끌어오느라 목을 긁힌 것으로 보인다. 직접 흥을 부르는 행동 중 하나이니 감사하며 듣는 것이 좋다. 원래부터 [[가창력]]보다는 노래로 히트를 친 가수에 가까운데, 목이 많이 손상되어서 지금은 가창력이 많이 떨어진 편이다. 그래도 종종 노래를 부르려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로 나오거나 [[불후의 명곡|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나오기도 하는데 히트곡이 많았던 사람인지라 호응과 무대매너가 좋은 편이다. [[2021년]]에 어머니의 묘소 정리를 위해 포크레인 면허를 취득한 걸로 알려져 있다. 2022년 여름에는 [[송해]]의 사망 이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가 조문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