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병은 (문단 편집) === 2015년 === [[파일:박병은카와구치.jpg]] [[파일:박병은카와구치2.jpg]] > '''"네 명? 아, 그때 이거? 세 명이 아니라 삼백 명이지."'''[* 박병은이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게해준 명대사] >---- >4人? あ, あの時のこれ?3人じゃなくて300人だよ。 '''긴 무명생활, 그 빛을 보다.''' 데뷔 후 15년 가까이 여러 작품에서 조연/단역으로 출연하다가 2015년 영화 [[암살(영화)|암살]]에서 [[전지현]]의 약혼자인 일본 장교 [[암살(영화)/등장인물#s-3.3|카와구치 슌스케]] 역을 맡아 주연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싸이코 같은 행동과 연기로 영화 중간에 잠깐 잠깐 등장했음에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배역을 받기 위해 총 네 번의 오디션을 봤으며, 그 네 번의 오디션 중 첫 번째에서는 개인적으로 일본어 선생님을 섭외해 발음, 억양 등 일본어를 배운 뒤, 일본어 대사를 전부 외워서 갔다.[* 그 전에는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었다.] 이어 두 번째 오디션에서는 [[암살(영화)/등장인물#s-3.3|카와구치 슌스케]]의 인생 일대기, 가족관계, 성격 등을 직접 생각해내어 레포트로 작성해 최동훈 감독한테 제출했다. 세 번째 오디션에서는 일본 군복과 장갑, 총을 준비해 액션을 선보였고, 마지막 네 번째 오디션에서는 대본을 다시 한 번 정독하였으며,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생각해 핸드크림을 바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1930년대 화장품을 조사한 후 집에서 핸드크림을 준비해 갔다. 총 네 차례의 오디션 끝에 출연배우 중 가장 마지막으로 캐스팅 되어 영화에 합류하게 되었다. 암살 이후에 비로소 인기를 실감한다고 밝혔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박병은의 연기를 보고 일본인을 섭외한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전에는 본인을 알아봐주는 대중들이 적었지만, 암살 이후 시나리오를 읽기 위해 카페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사진 요청을 한 적도 있었으며, 버스에서 알아보고 "300명이죠?" 라며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지만 나중에야 이해하고 같이 버스 뒷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드렸다고 한다.] 암살이 관객수 700~800만 명을 돌파한 이후부터는 젊은 사람들도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후 관객수가 1,200만 명을 돌파하자 박병은은 "1,200만 명 정도가 이제 저를 나쁜놈으로 기억할 것 같다." 라며 웃음을 지었다. 천만 배우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박병은의 가장 달라진 점은, 캐스팅 제의가 늘어나 여러 군데에서 그를 찾게되었고, 예전에는 태국에서 산, 끈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낡은 삼천 원 짜리 슬리퍼를 신고 다녔었는데, 암살 출연 이후 천만 배우가 계속 이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건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메이커 슬리퍼 하나를 새로 장만했다고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