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마리아 (문단 편집) == 기타 == *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1891)|김마리아]]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니 주의할 것. 김마리아와 박마리아의 공통점은 세례명 '마리아'와 여성 교육 및 운동가라는 점 뿐이다. 그 외에도 [[한국광복군]]에 배속되어 직접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한 [[동명이인]]의 [[김마리아(1903)|김마리아]]([[이범석]]의 아내)가 있는데 이범석과 이기붕이 라이벌이었던 관계로 이 김마리아는 생전에 박마리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 신혼 시절 살던 집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에 있는데 현재 1층에는 공구 상가가 들어선 상태이며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외관만 봐서는 거의 폐허 수준. * 성격이 대단히 인색했고 콧대가 높았다고 한다.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직후까지 이승만의 개인 [[비서]]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박용만(1924)|박용만]]은 박마리아를 가리켜 "굉장한 에고이스트다. 퍽 욕심이 많고, 남에게 지기 싫어했으며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했다. 퍽 인색했었고 그러면서도 콧대는 대단히 높았다"고 한다. 박용만에 의하면 박마리아는 남에게 자기 것은 쌀 1톨도 주는 법이 없으면서도 남이 주는 것은 주는 대로 받았다고 한다.[* 박용만, 경무대 비화 (내외신서, 1995년)] * [[이화여자대학교]] 동문회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친목 단체인 '이수회'의 회장이었는데 군의 [[장군]]과 고위 [[관료]]들, 가난한 집에서 성공한 배경 없는 개천에서 난 [[용]]들과 이화여자대학교 출신 여성들의 연결을 주선하였다. 그렇게 해서 승진을 바라는 군의 장군들이 박마리아에게 접근하려고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이수회의 젊은 여성과 [[재혼]]을 서두르는 일도 생겨났다.[* 정경모, 《찢겨진 산하:구름 위의 정담》 (기획 출판, 1986년) 170페이지] * 집필한 서적도 충격적인데 이 서적을 어느 [[신촌]] 헌책방에서 본 [[마광수]] 교수가 자신의 에세이에 "누가 이 글만 알고 박마리아가 나쁜 사람인지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한탄했다. * [[이승만]]의 정치 분석 서적 <일본 내막기>의 번역에도 이기붕과 박마리아가 관여했다.[* 이 책인 Japan Insideout은 [[제2차 세계 대전]] 전에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되었다.] 책을 번역을 의뢰받은 분은 기껏 번역했더니 박마리아가 중간에 가져와서 [[최덕신]] 번역으로 먼저 책을 만들어 이승만에게 선물했다. 나중에 이 책은 동일한 번역자의 손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내막>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에 재출간되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탓인지 원저자 이승만의 이름은 작게 표시되어 있다.] * 굉장히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고 권력욕도 강해서 남편인 [[이기붕]]을 상대로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다 나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한 자리라도 얻어서 행세하고 사는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주 [[부부싸움]]도 벌였다고 한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인물과 사상사, 2006년)] 이는 [[야인시대]]에서 이기붕을 닦달하는 바람에 이기붕이 골골대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 이기붕이 1957년부터 중병을 앓아 혼자서는 대소변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자 대리 업무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신빙성은 부족하다. * [[전북대학교]] 교수 강준만은 박마리아가 3.15 부정선거 때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던 것을 두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했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박마리아의 과욕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평가하였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인물과 사상사, 2006년)] * 열렬한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는데[* 이는 박마리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활란]]도 마찬가지로 장례식장에서 개신교 찬송가를 틀어 달라고 유언으로 남겼다.] [[4.19 혁명]]이 일어나자 [[개소리|"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험하고 나쁜 일이다."]]라는 글을 [[신문]]에 실었다가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만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자신과 남편을 비롯한 일가를 모두 파멸시키고 마는 단초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