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노해 (문단 편집) === 1980년대 <노동의 새벽> ===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1980년대는 노동시 창작도 가장 활발했다.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가 이 시대를 대표한다.[[https://koreanliteraturenow.com/writers-note/kang-gye-sook-current-state-south-korea%E2%80%99s-labor-poetry|#]] 박노해는 졸업 후 여러 업종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한편으로 시도 쓰기 시작했는데 1983년, <시와 경제>지에 '시다의 꿈'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4년에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시집'''으로서는 거의 최초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한국 시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미쳤다. 당연히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군사독재 정권은 이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서 탄압했지만, 이 시집은 널리 읽혔고 '''약 1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이란 문구에서 앞글자를 따서 [[필명]]을 지었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시를 발표하고 운동하는 7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그동안 그의 신원을 알아내려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언론에 추측 기사까지 날 정도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11651#home|노동자 시인 박노해 그는 누구인가 1988년 중앙일보 기사]][* 이 기사는 기자 출신 시인인 기형도가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