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근형 (문단 편집) == 연기 활동 == 1940년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정읍시|정읍군]] 정주읍 수성리(現 정읍시 수성동)에서 태어났다. 고향 후배인 가수 [[송대관]]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등학교|휘문고]]로 유학했고 서울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20718002600005_04_i.jpg|width=260]]}}}|| || {{{#ffffff 20대 시절 명함사진}}} || 휘문고등학교에서 연극부 활동을 했고 충무로에 배우 전문 학원에다니며 연극을하며 연기학과를 준비하다. 중앙대학교 개교후 입학해 연극영화를 전공하다가 중퇴한 뒤 국립극단 단원이 되었다. 1963년 [[한국방송공사|KBS]] 탤런트 3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으나, 정통연극과 달리 수준이 형편없던 당시 방송 드라마계에 만족하지 못해서 바른 소리를 많이 하다가 미움을 사서 방송계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때 KBS에서 퇴출 당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퇴출명단에 올랐지만 실은 평소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 [[PD(방송)|PD]]와 높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같이 퇴출된 연기자들 중엔 [[김혜자]]도 있었다. 김혜자는 탤런트 수입이 너무 적고 비전이 없어보여 [[동아방송]] [[성우]] 시험에 응시했다가 KBS의 미움을 사서 그랬다고], 연극활동은 수입이 너무 적어 생계유지가 도저히 안 되는 터라, 1967년엔 고향으로 낙향해서 낮에는 부모님의 여관 경영을 돕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만 마시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연출가가 연극에 잠깐만 출연해달라며 서울로 오라고 권했고 연극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상경해서 다시 연극을 했다. [[1968년]]에는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인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 하면서 문화계에서 일약 유명해졌다고 한다.[* 박근형이 [[ 송승환]]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원더풀 라이프'에 출연했을 때, 박근형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그해에 송승환이 아역상을 탔음이 확인되었고, 그때 두 사람이 트로피를 안고서 함께 찍힌 흑백사진이 공개되었다.] 1969년에는 [[동양방송|TBC]]로 가서 단역을 주로 했고 얼마 안 있어 신생 TV방송사인 [[MBC]]에 스카웃 되어 활동했다. 몇년 뒤에는 프리랜서가 되어 [[MBC]], [[동양방송|TBC]], [[KBS]]를 오가며 활동했다. 1970년대 말에는 주로 [[MBC]]에서 활동했고 1980년대부터는 MBC와 KBS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당시 박근형처럼 방송사들을 오가며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배우는 드물었고, 다른 배우들은 주로 특정 방송국에 전속계약을 맺고 출연했었다.]. TV에서 활동하는 사이에 연극계와 영화계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이정길]]과 더불어 1970년대 중후반 MBC 멜로드라마의 간판 남자배우였다. 이후로도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형제의 강]][* 이 작품으로 1996년 SBS 연기대상 수상.] 등등 굵직한 시대극에 자주 나왔고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의 [[김재규]]로도 유명하다. 연극계와 영화계에선 196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197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인정 받았지만, 방송계에선 상복이 별로 없어서 50대 중반이 되어서 받은 1996년 [[SBS 연기대상]]이 최초의 굵직한 상이었다. 방송사 전속 탤런트가 아니라 프리랜서였기에 방송사 상복이 없었던 것이다. 꽃할배 방영당시 출연진 4인방의 젊은 시절이 공개되었을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미노년 소리를 곧잘 듣곤 하지만 젊은 시절에도 미남이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에는 이런 얼굴을 좋은 인상으로 보지 않아서[* 당시에도 [[미남]]으로 여겨지던 얼굴이긴 했다. 동료배우인 [[사미자]]의 증언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같이 촬영을 끝낸 후 박근형이 허겁지겁 서두르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입구에 팬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얼른 도망쳐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열성팬을 몰고 다녔다. 다만 강한 인상탓에 사람들이 선한 인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엔 얼굴이 반듯하고 믿음직한 스타일의 [[미남]]이 안방극장에서 인기있던 시대였는데(박근형이 20, 30대를 보냈던 60, 70년대에는 [[신성일]], [[남궁원]], [[김진규(배우)|김진규]], [[신영균(배우)|신영균]], [[하명중]] 등의 미남 배우들이 영화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배우들과 TV배우들이 어느 정도 구별되던 시기라서 TV드라마에선 날렵하고 서구적인 미남보다 얼굴이 다소 넓적하고 듬직하고 한국적인 미남형이 각광받았다.), 본인은 이국적인 외모에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점이 컸다고 한다.] 제비나 악역(미묘하지만 동생 등쳐먹는 형)을 주로 맡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장희빈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던 [[윤여정]]이 뉴스룸 인터뷰에서 밝힌 증언에 의하면 박근형은 당시 잘생기고 연기 잘하기로 매우 유명한 배우였다고 한다. 심지어 드라마 대사에서도 똑같이 언급된다.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 '모래성'에서 윤여정이 박근형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오빠가 젊었을때 충무로 영화판에서 영화 찍자고 꽤나 난리였다'는 대사를 한다. 그 유명한 [[원빈]]도 본인 주장에 따르면 데뷔 전만해도 인기도 없었고 어디 가서 잘생겼단 소리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즉 '''스스로를 낮춰 겸손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형의 필모를 살펴보면 멜로물에서 여성들 사이를 오가는 치정극 미남 남주 역이 굉장히 많다. 유달리 재벌 회장 역을 많이 맡아서 '''회장님 전문 배우'''로도 알려져있다.[* 특히 <모래시계>에서 똑똑하고 냉정한 권위자인 윤 회장 역을 맡았을 때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실장 전문 배우였는데 [[청춘의 덫(MBC)|청춘의 덫]] 1970년대 원판과 영화판에서는[* [[심은하]]가 나오는 [[청춘의 덫(SBS)|청춘의 덫]]의 원판, 1970년대 심의에 걸려서 조기 종영도 아니고 그냥 미완으로 끝났다. 1990년대판은 그 작품의 리메이크이자 완전 복원판.] 여주인공을 거두어주는 츤데레 실장 노영국 역을 맡았다. 오히려 [[전광렬]]보다 더 [[연기력]]이 풍부해서 종영 후 제작된 극장판에서 유일하게 TV와 영화판에서 같은 역을 맡았다. 그 외에도 [[대물(드라마)|대물]]의 썩어빠진 여당(민우당) 대표 조배호 등 고위 정치인 역도 자주 맡는다. 회장님이든 정치인이든 대부분 악랄한 [[최종보스]] 역할이 많은 편. 구한말의 일본측 지도자,[* <명성황후>(KBS)의 [[이노우에 가오루]], 안중근(SBS 특집 2부작)의 [[이토 히로부미]]로 출연했다.] [[일제강점기]]의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여명의 눈동자>(MBC)의 최두일(일본명 스즈키) 역이 대표적.] 심지어는 높은 사람이 아닌 서민층 노인 역을 맡아도 [[형제의 강]]에서처럼 가족들 고생시키는 안 좋은 역할. [[선역]]을 맡은 적이 청춘의 덫을 비롯하여 긴 연기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김정수(각본가)|김정수]]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3개([[엄마의 바다]](MBC, 1993),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MBC, 2001), <누나>(MBC, 2006~2007))에서는 모두 선역으로 출연하였고, 주로 [[영화]]에서는 선역으로 자주 나왔다. 앞서 말한 [[청춘의 덫(영화)|청춘의 덫]] 영화판이나 공산당의 종교 탄압을 다룬 모 종교 영화에서는 반공 [[목사]], 청춘물에서는 빗나간 학생을 선도하는 교사 역으로 나왔다. 고무신 영화로 알려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시리즈에서는 생활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아버지 역할로 나왔다.[* 1부는 엄마는 죽고 아버지는 병원에 간 가족의 비극과 재기를, 2부는 윤미라가 분한 새 엄마가 들어오는 이야기, 3부는 서울에서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아이 이야기이다. 3부부터는 박근형은 아예 공기수준이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공화국 시리즈]]에서 자주 나왔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에서는 [[이종찬]]으로 나와 출세냐, 쿠데타냐, 양심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승만의 병력 동원 명령을 거부하고 군의 정치개입 중단 선언을 작성하다 해임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 되는 [[박종규]] 역을 맡았다.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는 [[김재규]]로 나와 카리스마적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제대로 된 악역 연기를 보고 싶다면 [[여명의 눈동자]]를 적극 권장한다. 독립운동가 때려잡는 악랄한 종로경찰서 형사 조선인 스즈키가 그의 배역이다.''' 다만 의외로 [[제1공화국(드라마)|제1공화국]]에서는 비교적 온건했던 정치인 고하 [[송진우(독립운동가)|송진우]]를 연기하기도 했다. 1980년대 TV드라마를 시청하던 세대에게는 악역 전문으로 많이 알려져서, 너무 리얼하게 연기한 나머지 길가다 욕먹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요즘 드라마는 악역에게도 시청자가 웃을 포인트를 넣어 한 템포 쉬어 가게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땐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유선방송이 없고 지상파 방송국이 3개 뿐이던 던 당시의 TV연속극 시청률은 매우 높았고(50% 넘는 일도 비일비재) 시청자도 감정이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장희빈이나 일제 검사 역할같은 악역을 맡은 배우는 한동안 기쁘게 악담을 들으며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이건 우리 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박근형도 그 쪽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극 출연은 1970년대의 윤여정 주연 장희빈에서 숙종 역, [[1998년]] MBC [[대왕의 길]]에서 [[영조]] 역, [[2002년]] [[KBS]]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역을 맡은 바 있다. 특히 대왕의 길의 영조 역은 평론가들과 사극 팬들에 의해 최고의 영조 연기로 극찬을 받고 있는데[* 많은 배우들이 영조를 맡았지만 그 중 《대왕의 길》의 박근형이 연기한 영조가 최고의 영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 생전의 영조가 환생이라도 하듯이 급하고 버럭하는 성질과 편집증적 의심, 자식에 대한 편애. 사도세자에 대한 갈굼, 마더 콤플렉스. 백성을 생각하는 명철하되 까칠한 애민군주 등 야누스적이고 다면적인 영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어 전무후무한 연기라는 평을 받았다. 워낙 카리스마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다 보니 찌질연기가 안 어울리는 배우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원작의 TV 문학관 [[무명]]에서는 도장위조 사기범으로 나와서 궁극의 찌질이 연기를 보여주었고, 구로 카빈총 강도사건을 다룬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 특별편에서는 범인으로 나와 [[임채무]]와 함께 불멸의 연기를 보여준다. 1996년 방영한 <[[형제의 강]]>에선 큰아들만 애지중지하고 다른 자녀들은 다 개무시하지만 정작 금지옥엽처럼 떠받드는 큰아들에게 개무시당하고 굴욕당하는 아버지 역을 맞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역시 1996년 방영한 SBS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윤원형]]으로 분해 [[인종(조선)|인종]]을 저주하다 임꺽정에게 걸려서 복날 개패듯 얻어맞다 싹싹 빌어서 빠져 나오는 찌질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2000년작 [[산책]](영화)에서는 말도 않고, 세상과 겉돌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은 노인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때문에 못난 역할은 불가능한 배우'''가 절대 아님을 인증했다. 2012년 연극 <삼월의 눈>에서 아내와 살아온 한옥을 개발업자들에 의해 헐리고 그 돈으로 며느리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차려주고 자신은 홀로 시설에 들어가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할아버지 역을 맡아 폭풍연기를 보여주었다. 예전에 <아버지> 신드롬일 때 지친 아버지 역으로도 열연했다. 이토록 부패한 기업총수나 정치인부터 돈 없고 힘 없고 늘 주눅들어 있는 서민에 이르기 까지 [[야누스|극단적인 두 경향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 가능]]한 배우이다. 역시 탁월한 중견 연기자로 유명한 그 [[김갑수]]조차도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 연극을 시작할 때는 연기를 못했다. 그때 박근형 같은 좋은 선배의 연기를 관찰하며 열심히 배웠다. 박근형 선생의 연기를 옆에서 배우고 싶어 출연하는 작품에 작은 배역이라도 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박근형 선생은 나에게 연기 교과서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외에도 명배우인 [[백윤식]] 또한 자신의 인생 최고의 배우에 박근형을 꼽고 있으며 [[전도연]], [[조민수(배우)|조민수]]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멘토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에 [[서동환(추적자 더 체이서)|서동환]] 역으로 출연했는데, [[연기력]]이 만개한 배우들[* 이 해 [[SBS 연기대상]]을 탄 [[손현주]]부터 해서, [[김상중]], [[김성령]], [[류승수]]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었다.]이 가득 찬 이 드라마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가히 '진 최종보스'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이 드라마는 물론이고 [[형제의 강]]에서도, 원래 본인이 호남 출신임에도 [[밀양시]]를 배경으로 한 해당 작품에서 [[동남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경상도]] 지역의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박근형이 경상도 출신인 걸로 아는 시청자들도 있을 지경이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연기자들의 경우 경남과 경북 사투리의 미묘한 차이를 잘 몰라서 둘을 마구 뒤섞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박근형은 경상도 출신 사람이 봐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훌륭한 억양을 선보이곤 한다. [[손현주]]가 2012년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드라마(추적자 더 체이서)에는 아이돌이 없고 스타가 없는 대신 박근형 선생님이 계신다"는 소감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12|#]] 이후 소속사가 처음으로 생겼다고 한다. 추적자에서의 연기가 빛을 봤다. 2012년 연말 [[가문의 영광(영화)|가문의 영광]]시리즈인 [[가문의 귀환]]에 출연했지만 이 시리즈가 워낙 퀄리티가 병맛인지라 흥행에 참패하고야 만다. 그래도 2013년 7월에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그의 명불허전 명연기를 볼 수 있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 [[이순재]], [[신구|신구]], [[백일섭]]과 H4(할배 넷)로 출연, [[이서진]]과 함께 유럽과 대만 등지를 여행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극중에서 재벌 회장역을 주로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다르게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감동받고, 갓 항암치료를 마친 아내를 위해서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찍어서 보내주거나 매일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등 의외의 로맨틱 순정남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로맨틱 가이의 면모 덕택에 2013년 이후부터 노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멋진 미노년 이미지로도 자주 출연하고 있다. 방영 전 네 멤버가 제작발표회 때 tvN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했다. 시상식 컨셉으로 턱시도를 입고 나왔는데, 이순재가 "우리 중에 대상 받아본 사람이 누가 있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박근형이 1996년도 연기대상 수상자[* SBS [[형제의 강]].]이고, 이순재도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 경력은 있다. 이렇게 예능에서도 활약을 보였지만 본인의 강직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 꽃보다 할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기도 했다. 특히 스페인 편에서 H4 네 명이 모두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제작진이 자신들이 맞춰놓은 일정과 대본에 따라서 촬영을 강행하고 출연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 그리스 편에서는 할배들보다 이서진과 최지우의 썸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본말이 전도된 부분,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원로급 배우 네 명을 너무 흥미 본위로 편집하는 모습 등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던 듯하다. 2016년 9월 1일,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였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761594|영상]] 2017년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1030128200005|#]] 8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순재]]와 함께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몇 남지 않은 노년 연기자이기도 하다. 물론 찾아보면 몇몇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연령대에 이렇게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는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 배우로서 선배인 이순재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젊어서 강한 인상을 지닌 자신에 비해 선한 인상 덕분에 이순재의 배역운이 너무 좋은 편이어서 매우 부러웠다고. 또한 이순재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도 빨라서 늘 자신보다 앞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물론 그 발언에는 겸손의 의미도 읽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