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군 (문단 편집) == 생애 == 1986년 3월 9일에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읍|언양면]](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성격 차이로 그가 어렸을때 이혼을 했고, 홀어머니의 아래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되어서야 집에서 쓸 첫 냉장고를 샀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으며, 어릴 때는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이던 시기에 그의 어머니가 '''[[요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7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집안의 생활비와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약 6년간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공부를 했고, 학교에서 성적 전교 1등에 [[학생회장]]의 직책을 수행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교의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고 장학금을 받았지만, 한 학기만 장학금이 나오는 것을 알고 실망하여 곧바로 자퇴를 했다. 그래서 그는 집안의 생계를 위해, 20살의 나이에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에 [[특전부사관]]으로 입대하여 본격 [[직업군인]]의 길을 걷게되었다. 2007년에 특전부사관으로 [[하사]] 임관한 이후 3년차가 되자, 당시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휴가들을 '''한꺼번에 다 써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러 갔었다고 한다. 모든 휴가를 써서 나간 그렇게 긴 휴가의 기간 동안에 어머니의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보낸 이후, 자신의 부대로 복귀를 했는데 사나흘 뒤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지휘관[* 그때 당시의 지휘관은 양기봉 [[중령]]([[육군사관학교]] 43기)이었다.]에게 보고를 한 이후에, 급하게 병원으로 갔지만 대구 근처 쯤을 달리고 있는 버스 안 속에서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유언은 "매장을 해서 봉분묘를 만들어 달라."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700만원 이상 하던 매장의 비용 때문에 어머니의 소원을 직접 들어드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복무하던 부대의 직업군인들이 직접 모금을 해서 봉안묘(납골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2008년도 [[특전사 탑팀]] 출신이며 그 외에도 '''[[특급전사]], 해상척후조, 산악전문과정, 강하조장, 공수월계 또는 공수금성 1단계 휘장'''을 가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