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계옥 (문단 편집) === [[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고증 오류 및 역사 왜곡|조선구마사 역사 왜곡]] 논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선구마사/논란 및 사건 사고/고증 오류 및 역사 왜곡)] * 1화가 방영되자마자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여말선초]] 배경이 아닌 중국식 소품이 나타는 등의 [[동북공정]]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시청자 게시판은 [[역사왜곡]] 의혹을 제기하는 글로 도배되었다. 문제제기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조선]] [[기생]]집이라고 설정된 배경이 전형적인 [[중국]]식 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식탁에는 [[중국 요리]]인 [[월병(과자)|월병]], [[피단]], [[양고기|양갈비]], 중국식 [[만두]], 중국 [[술]]이 올라가 있다. * OST 월아고-고쟁독주, 고산류수-고금독주에 사용되는 현악기가 [[고쟁]], [[고금]]인데 이는 [[중국]] [[전통]] [[악기]]이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1421638|#]] * 소품으로 [[중국]]식 칼을 사용했다. [[https://www.ddanzi.com/index.php?mid=free&document_srl=673292167|#]] [[파일:586950B2-88EA-42EF-81FD-9E14098DC6F3.png|width=400]] [[파일:B8423825-C822-4B60-BC8D-FD21780D7E72.jpg|width=400]] * 이에 [[2021년]] [[3월 23일]], [[SBS]] <[[조선구마사]]> 제작진은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공개했다.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475113|#]] 의혹을 제기한 측이 문제삼은 내용과 다소 다른 점은 [[명나라]] 국경과 맞닿아 있는 [[의주군|의주]] 근방으로 설정되어 있고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것은 자막을 통해 나갔다는 게 제작진 입장의 요지이다. ||중국풍 소품과 음식 관련해 제작진 입장을 알려드립니다.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이 세자인 [[양녕대군]] 대신 중국 국경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서역의 구마 [[사제]]를 데려와야 했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의주]] 근방([[명나라]] 국경)'이라는 해당 장소를 설정하였고, 자막 처리 하였습니다. 명나라를 통해서 막 조선으로 건너 온 서역의 구마사제 일행을 쉬게 하는 장소였고,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는 극중 한양과 멀리 떨어진 변방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뿐, 어떤 특별한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예민한 시기에 오해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시청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 향후 방송 제작에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오히려 해당 작가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만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부엉이]] 관련한 기록은 잘 인용하면서, 대신 기초적인 역사 지리 상식조차 왜곡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평안북도]] [[의주군]]은 단 한 번도 명나라 국경이었던 적이 없다. 당시 의주는 엄연히 조선의 영토였고, 의주 북쪽, 즉 [[압록강]] 북부지역은 명나라의 영토가 아니라, [[명나라]]와 [[조선]]의 경계지였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정해지지 않았던 전근대 동북아시아는 국경을 정할 때, 선이 아닌 면, 즉 땅을 기준으로 국경을 정했다. 그리고 국경이 정해지면 국경과 국경 사이의 땅은 경계지(완충지대)로 정하고,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당시 명나라의 국경은 압록강을 한참 지난 [[오골성|봉황성]]이었다. 정작 드라마 시점보다 한참 나중인 [[세종대왕]]의 [[4군 6진]] 개척 이전에는 [[여진족]]들의 습격 우려 때문에 [[외교]] 사절을 함부로 의주를 통해 육로로 보내기 위험했고, 이 때문에 조선 초기에도 뱃길로 사절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엑소시즘|구마]]사가 뱃길로 오는 설정이 [[의주]] 일대를 [[명나라]] 영토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즉 중화주의적 역사왜곡을 대놓고 시인하거나 주장한 것이다. 게다가 [[이방원|태종]]기 당시 명나라는 신생국으로, 건국된지 50년 전후 밖에 안 된다. 그 이전에는 100년 가까이 [[원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그 경향은 [[몽골]]에 가까운 북쪽일수록 심했다. 당연히 의주가 중원 국가 쪽의 영향을 받았다 한들 그 영향은 몽골풍이어야 하지, [[한족]] 풍이 아니다. 중국풍이라고 해도 문제인 것이, [[월병(과자)|월병]]은 [[한국]]으로 치면 [[송편]]과 같은, 주로 [[중국]]의 명절에만 먹는 음식이며 평소에는 잘 먹지 않았다. 게다가 [[여말선초]] 시기에는 [[밀]] 재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로[* [[한반도]] 농민들 입장에서는 같은 시기 파종할 작물로는 [[밀]]보다 [[보리]]가 유리했다.] [[개경]] 일대의 부자가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리고 [[피딴]]은 습기 때문에 쉬이 썩는 새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으로, 석회 성분이 있는 진흙을 바르고 겨에 묻어서 발효시킨 강남풍 음식으로 당연히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만든다. 정작 드라마에는 음식 상차림이 매우 격식없이 나왔으나 월병이나 피딴 모두 추운 변방인 의주에서 쉽게 격식 없이 대충 내놓을 만한 요리가 아니다. 즉, 최소한의 고증은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고 알아볼 생각도 없었으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 일각에서는 한복 등의 문화를 중국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에 일조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말까지 존재한다.[* 실제로 방영 이후 중국에서는 '''봐라, K문화라더니 중국 거 다 베끼지 않느냐'''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제작진의 입장문은 [[긁어 부스럼|논란을 키우면 키웠지,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논란을 계기로 네티즌들은 그를 감싸준 SBS를 한국 최초의 [[동북공정]] 옹호 방송국이라고 비판하고 그에게는 [[차이나 머니]]를 달달하게 받는 작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차이나머니를 받는다면 [[유령 회사]]나 [[페이퍼 컴퍼니]]의 [[검은 돈]]으로 SBS를 비롯한 국내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비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민들이 집중적으로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SBS가 방영 취소를 결정하면서 '''2회 만에 종영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