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성씨) (문단 편집) ==== [[경명왕]] 계열 ==== 경명왕은 통일신라 말기의 왕으로 김씨에서 박씨로 다시 왕좌를 되찾은 [[신덕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신덕왕은 [[아달라 이사금]]의 원손임을 자처한 바 있다. 아달라이사금은 [[일성왕]]의 아들로, 일성왕은 다시 [[유리 이사금|유리왕]]의 장남이다. 그래서 유리왕의 차남인 파사왕계와 갈라진다. '''참고로 아래 8왕자는 그 실존성을 의심받고 있다. 애초에 해당 인물에 대한 기록이 박씨 종친회 등에서만 나오는 것이니...''' 1. 장남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의 후손 * [[밀양 박씨]]: '''박씨의 큰집'''. 박씨 중 75.6%를 차지하며, 2015년 기준 약 316만 명이다. 조선 시대에만 문과급제자 261명, 무과급제자 1147명이라는 대단한 물량전을 선보였다. 인구가 많았던 탓에 아무래도 견제를 받았는지 재상은 1명뿐이었다. [[두산그룹]] 창업자 계열이 여기다. * 창원 박씨: 밀양 박씨에서 분적한 집안으로, 고려 후기 창원도호부사를 지낸 박령을 관향조로 한다. 2000년도 조사 결과 1897가구, 6,12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 영암 박씨: 밀성대군 언침의 10세손 박항을 시조로 한다. 밀양 박씨에서 분적한 것은 아니다.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1명, 무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한 무골 집안이다. 1,954가구 총 6,120명(2000년) * 태인(태산) 박씨: 밀양 박씨 도평의사공파 돈재공파라고도 한다. 총 456명(2000년). 고려 때 밀직부사 박언상을 시조로 하며, 전 KBS 사장 [[박권상]]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는 1명이다. * 선산(구미) 박씨: 조선 때 박선민이 시조이며, 음서로써 관직에 천거되어 목민관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 중에 세조의 후궁인 근빈 박씨가 있다. 1. 2남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의 후손 * [[고령 박씨]]: [[박정희]], [[박근혜]], 어사로 유명한 2등 분무공신 [[박문수]] 등을 배출한 집안이다. 현재 4만 명 정도의 인구로 작은 집안인데도 조선 시대 56명에 달하는 문과급제자를 냈다. 무과급제자는 23명이다. 1. 3남 속함대군(速咸大君) 박언신(朴彦信)의 후손 * [[함양 박씨]]: 박씨 본관 중 현대 남한의 박씨 본관별 인구로는 2번째이다. 69명의 문과 급제자와 50명이 넘는 무과급제자를 배출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는 본관이다. * 삼척 박씨: 박언신의 14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의 개성부윤 박원경(朴元慶, 1353~1426)을 중시조로 한다.[[https://blog.naver.com/pjh6497/40022483360|#]] 1,535가구 총 4,929명(2000년) * 군위 박씨 1. 4남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후손 * [[죽산 박씨]]: 박씨 중 6번째로 큰 집안이다.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영의정을 지낸 [[박원형]]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9명, 상신 2명을 배출했다. 면천 박씨, 평산 박씨, 고성 박씨, 음성 박씨 등이 죽산에서 분적해 나갔다. * 평산 박씨: 평주 박씨라고도 한다. 죽산 박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 음성 박씨: 죽산 박씨의 분파로, 고려의 무장인 철성백 [[박서]]의 후인들 중 함흥차사 충민공 [[박순(여말선초)|박순]] 계파의 성씨이다. 1. 5남 사벌대군(沙伐大君) [[박언창]](朴彦昌)의 후손 * 상주(상산) 박씨: 조선 문과급제자 수는 11명, 무과급제자가 30명이었다. * [[충주 박씨]]: 박씨 본관 중 8번째 인구를 가진 집안으로 [[박찬호]],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배출한 집안이다. 인구는 3만 명 정도로 22명의 문과급제자와 1명의 상신, 그리고 14명의 무과급제자가 있었다. * 평택 박씨 1. 6남 완산대군(完山大君) 박언화(朴彦華)의 후손 * [[무안 박씨]]: 박씨 중 5번째 크기를 자랑하는 집안으로 완산군 박언화의 후손들이다. 충렬왕 때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면성(지금의 무안)부원군에 봉해진 박문오, [[팔만대장경]] 창제 공신 박문정, 한글 점자를 창안한 [[박두성(1888)|박두성]]을 배출했다. 무안(務安) 박씨는 본관 [[면성 박씨]](綿城 朴氏)와 본관 [[무안 박씨]](務安 朴氏)의 족보를 통칭하여 [[무안 박씨]](務安 朴氏)로 불리며, 조선시대 25명의 문과급제자와 63명의 무과급제자를 배출했다. [[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의 우리나라 성씨본관별 인구 현황에 따르면, [[무안 박씨]](務安 朴氏)는 90,785명이고, [[면성 박씨]](綿城 朴氏)는 7,666명이다. * [[전주 박씨]]: [[전주]]가 들어가서 흔해 보일지 모르나 2015년 자료에 의하면 1,985명으로, 의외로 전국에 2,000명도 없는 희귀한 본관이다.[* 참고로 1930년 일제강점기 때 실시한 국세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이 북한에 몰려 살고 있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가 1명, 무과급제자가 25명이다. 1. 7남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의 후손 * [[춘천 박씨]]: 1만 6천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집안으로,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했다. 퇴계 이황의 어머니가 이 집안 출신이다. 1. 8남 월성대군(月城大君) 박언의(朴彦儀)의 후손 * [[월성 박씨]]: 월성은 오늘날의 [[경주시|경주]]로 계림이라고도 부르는데, 경주 박씨는 [[박제상]]계, 계림 박씨는 [[경애왕]]계로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