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울로 (문단 편집) === 제2차 선교 여행 === 1차 여행 항목의 주석에도 짧게 나와 있지만 출발 전부터 작은 트러블이 발생했다. 1차 여행 때 마르코(마가)가 중도에 하차한 것 때문에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이번 여행에도 마르코를 데리고 갈 지 말 지를 두고 크게 다툰 것이다. 바르나바는 마르코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마르코에게 실망했던 바울로는 끝까지 반대를 굽히지 않아서 결국 여행 팀이 둘로 갈라지게 되고,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해로를 통해 키프로스로 다시 향했으며, 바울로는 [[실라]](실바누스)를 데리고 킬리키아(길리기아) 쪽으로 향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선교 팀이 둘로 늘어나는 순작용 아닌 순작용이기도 했다. 1차 여행 때는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해 위쪽으로 C자를 그리면서 향했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곧바로 위로 올라가 루스드라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루스드라에서 바울로와 합류한 제자가 바로 [[티모시|티모데오]]이다. 이로 인해 바울로 팀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게 된다. 바울로는 소아시아 방향의 비두니아 쪽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성경에 따르면 '예수의 영이 가지 못하게 막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바울로는 비두니아와 동서 반대편에 있는 드로아[*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Alexandria Troas). 지금의 튀르키예 달리안(Dalyan)에 해당한다.]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인고 하니, 바울로의 환상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고, 그제서야 바울로는 '우리를 마케도니아로 보내시려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이 때 의사 '[[루가]](루카스/루카/누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이후 1차 선교여행 때 돌팔매질을 당한 것으로 인해 지병을 얻게 된 바울로의 주치의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이윽고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의 필립비에 도착한 바울로 일행은 거리에서 한 귀신들린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소녀가 바울로 일행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향해 "이 사람들이 하느님의 종이다"라고 몇날 며칠을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바울로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 귀신을 쫓아버리는데, 여기서도 문제는 역시 발생했다. 그동안 이 소녀의 예언을 이용해 복채를 벌어먹던 자들이 소녀에게서 귀신이 떠나 더이상 예언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앙심을 품고 행정관에게 바울로를 혹세무민하는 자들이라고 참소한 것이다. 이 행정관은 이 자들의 말만 듣고는 바울로의 변론을 제대로 들을 생각도 않고 다짜고짜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치라고 명하게 되니, 바울로와 실라는 졸지에 매타작을 당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그 날 한밤 중, 바울로와 실라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자 '''별안간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박살이 나 죄수들이 몽땅 풀려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스탠 리(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s-2.9|망연자실하여 '난 죽었다'를 외치며]] 자결하려는 간수장[* 죄수가 탈출하면 그 책임은 그 죄수를 감시하던 간수에게 돌아가기 때문. 일찍이 사도 [[베드로]]가 헤롯 아그리파에게 붙잡혀 투옥돼 있던 중 천사의 도움으로 탈옥하자 분노한 헤롯에 의해 베드로를 지키던 간수들이 처형된 적이 있었다(사도행전 12장 6절~19절).]을 소리를 질러 말리고, 그의 배려로 치료를 받은 바울로는 간수장과 그 가족들에게 세례를 준다.[* 여기에서 매우 유명한 구절인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네 집안이 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16. 31)이 등장한다. ] 다음날 행정관이 석방조치를 내리자 바울로는 "로마 시민을 재판도 없이 채찍질하고 이제 와서 그냥 나가라고 하는 것이오? 직접 와서 우릴 데려가라고 하시오."라고 요구한다.[* 당시 마케도니아도 로마의 영토였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보유한 사람은 굉장한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특히 정식 재판을 받기 전에는 형벌을 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재판도 없이 채찍질을 했으니 그 행정관은 '죽었구나'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행정관은 당장 달려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제발 나가달라고 빌었고, 바울로는 별 말 없이 관청을 떠난다. 이후, 바울로는 필립비를 떠나 테살로니카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도 여느 때처럼 선교활동을 하려니 이번엔 또 다른 유대인들이 나타나 불량배까지 동원해 바울로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이 때 바울로는 야손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야손의 도움으로 밤에 몰래 피신하여 베뢰아로 가게 된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테살로니카의 사람들보다 훨씬 신사적이어서 설교를 더 잘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식이 또 데살로니카에 있던 그 유대인들의 귀에 들어가자 이들도 베뢰아까지 쫓아와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한다. 결국 바울로는 티모데오와 실라를 상황 보고역으로 베뢰아에 남겨두고 혼자 배를 타고 신들의 천지이자 전도난이도 최종보스급이라 할 만한 [[아테네]]로 향한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날마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간의 토론이 벌어졌는데, 바울로는 티모데오와 실라가 올 때까지 매일 회당에서 사람들과 토론을 즐겼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등 쟁쟁한 그리스 학자들 앞에서 한 연설에는 바울로의 학문상 배경이 잘 드러난다. 그러던 어느날 바울로의 설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린 잘 못 알아듣겠는데, '아레오바고(아레오파고스)'[* 그리스어로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라는 대형 연극장이 있으니까 거기서 대대적으로 설명 좀 해주쇼"라고 하니 바울로는 속으로 기회가 왔다 쾌재를 올리며 아레오바고로 향한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울로는 그리스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했다고 한다. >22 바울로는 [[아레오파고]] 법정에 서서 이렇게 연설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23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24 그분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야훼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중 하나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문맥상 우상천지인 아테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가깝다.] >25 또 하느님에게는 사람 손으로 채워드려야 할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하느님께서는 [[아담|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 위에서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27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28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기원전 6세기의 크레타 시인 에피메니데스의 인용이다.]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또 여러분의 어떤 시인은 '우리도 그의 자녀다.'[* 기원전 3세기의 킬리키아 시인 아라토스의 인용이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29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느님을,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을 가지고 만들어낸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무지했던 때에는 눈을 감아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 회개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31 과연 하느님께서는 [[예수|당신이 택하신 분]]을 시켜 온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고 또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그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 >- [[사도행전]] 17:22~31 (공동번역) 바울로의 노력으로 [[그리스인]](희랍인)들도 [[그리스도교]]에 귀의했지만,[* 이 중에는 놀랍게도 아레오바고의 대법관인 디오누시오도 있었다.] 그리스도교 내부의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도 할례를 위시한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열렸고 바울로는 그리스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율법을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논쟁 끝에 결국 회의는 그리스인들에게 유대인들과의 친교를 목적해 음식과 할례 문제에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바울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스로 향한다. 코린토스에서 '아퀼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로마 출신 유대인 그리스도교도 부부를[* 당시 로마에서도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과 정통파 유대인들이 분쟁을 일으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을 로마 시에서 추방했는데 이 부부도 그래서 로마를 떠나 코린토스로 오게 되었다. 이 일은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도 기록하고 있다.] 만난 바울로는 이 부부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 부부 또한 바울로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바울로의 생업이 천막 제작이었는데, 남편인 아퀼라도 마침 천막 제작업을 하는 사람인지라, 바울로는 같이 천막 제작을 도우며 회당에서 선교활동을 지속하게 된다. 그러기를 6개월, 드디어 마케도니아에서 티모데오와 실라가 도착해 교회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 아직 [[테살로니키]] 성도들에게 아직 미성숙한 면이 보인다는 보고를 들은 바울로는 장문의 편지를 두 통 써서 티모데오 편에 보내 성도들에게 가르치게 해 주는데, 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후서'이다. 코린토스에서도 유대인들은 역시 바울로를 반대했는데, 바울로는 아예 자기 옷을 털면서[* 옷/신발을 턴다는 것은 먼지를 그 자리에 남겨두면서 '저주' 또한 남겨둔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니들은 벌을 받든지 어떻게 돼도 난 모른다.'라며 두번 다시 회당에 가지 않는다. 그렇게 코린토스에서 가르치기를 1년 6개월을 하고 있었는데, 웬일로 유대인들의 회당장인 크리스보가 바울로에게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분노한 유대인들은 크리스보를 파면하고 '소스데네'라는 자를 회당장으로 앉혀 바울로를 신임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하게 하는데, 이후의 일이 또 골때린다. 유대인들이 총독에게 '하느님을 섬긴다는 놈이 율법을 어기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둥 온갖 고소문을 읊고 나자 바울로의 차례가 되어 변론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갈리오가 변론을 중지시키고는 하는 소리가 "이게 무슨 중범죄나 심각한 일이면 내가 들어야 하는게 맞는데, 지금 고소문 들어보니까 그쪽 유대인들끼리의 종교 문제 아니오? 이런 일로 굳이 나까지 건들지 말고 당신들끼리 처리하시오. 난 그쪽 사정 가지고 재판관 노릇하고 싶지 않으니까."...되시겠다. 한마디로 고소를 각하한 것. 회당장 소스데네는 그 자리에서 속 터진 유대인들한테 몰매를 맞았다. 이렇게 허탈한 재판이 끝난 후, 유대인들에게 몰매를 맞고 나서 마음이 바뀐 소스데네까지 새 성도로 맞아들이는 일까지 있은 후에 바울로는 1년 6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안티오키아로 돌아간다. 일반적으로 행전 18:1-17의 사건들은 클라우디우스 칙령이 이루어진 기간과 연결짓는다. 오로시우스는 칙령이 기원후 49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클라우디우스는 통치 9년째 되던 해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 요세푸스와 수에토니우스 모두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후자의 기록을 더 선호한다: "클라우디우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분노로 계속해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오로시우스, ''Historiae Adversus Paganos'' VII, 6:15 그러나 게르트 뤼데만은 클라우디우스 칙령을 기원후 49년이 아니라 41년으로 간주했는데, 근거는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이 다시 너무 많이 늘어나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도시에서 그들을 쫓아 내기가 어려웠을 때, 그는 그들을 쫓아 내지 않고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계속하면서 모임을 갖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는 또한 가이우스가 다시 도입한 모임을 해산했다. >---- >카시우스 디오, ''Historia Romana'' LX, 6:6 기원후 49년에 일어났던 유대인 추방 명령과 달리, 디오가 언급한 41년의 사건에서는 유대인들을 추방하지는 않았지만 모임을 금지했다 (Lüdemann, ''Paulus, der Heidenapostel''). 그러나 헬가 보터만에 의하면, 41년과 49년의 명령은 각각 다른 사건이었다 (Botermann, ''Das Judenedikt Des Kaisers Claudius''). 우도 슈넬레는 별개의 사건인 41년의 칙령과 달리, 18:1-17의 사건은 49년의 칙령과 더 잘 조화된다고 결론지었다 (Schnelle, 신약정경개론). 행전 18:12에는 갈리오가 아카이아의 총독이라고 언급되었다: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작당을 하여 바울로를 붙잡아 법정으로 끌고 가서 >---- >공동번역성서 제롬 머피-오코너에 의하면, 클라우디우스가 델피로 보낸 편지에서 갈리오의 재임 기간이 언급된다. 또한 클라우디우스가 26번째 임페라토르로 등극되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편지는 갈리오의 후임자나 델피의 위원회에게 보내졌다 (Murphy-O'Connor, ''St. Paul's Corinth: Texts and Archaeology''). 한편 구스타프 아돌프 다이스만에 의하면, 27번째 임페라토르 등극은 기원후 52년 8월 1일에 이루어졌다 (Deissmann, ''Paulus''). 따라서 결론적으로 갈리오는 51년 초에서 52년 초여름까지 총독으로 재임했다 (Schnelle, 신약정경개론). 따라서 바울로는 기원후 49-50년에 고린토를 도착했으며, 행전 18:11: >바울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거기에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 >공동번역성서 1년 6개월에 대한 설명을 통해, 바울로가 붙잡혀 갈리오에게 끌려갔을 때가 51년 여름 즈음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