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울로 (문단 편집) === 출생 === > (상략) 나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한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 ----- > 공동번역 성서, [[로마서]] 11장 1절 베냐민 지파 소속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아간 이스라엘 밖의 유대인 공동체를 말한다.]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한 아나톨리아의 항구도시 [[타르수스]](다르소) 태생이다.[* 자신이 필립보서 3장 5, 6절에서 말하길, "나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고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고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1:39에 보면 자기소개를 하면서 "나는 길리기아의 다르소 출신의 유다인으로 그 유명한 도시의 시민입니다."라고 표현한다.] 학자들은 보통 바울로가 기원후 5년 즈음에 태어난 것으로 이해한다: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 >개역한글, 빌레몬 1:9 [[필레몬서]]가 친서이고 이 편지가 기원후 61년경에 기록되었다는 가정 하에, 기원후 5년을 바울로의 탄생 기간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 제임스 D. G. 던은 출생 기간을 기원후 1-2년으로, 제롬 머피-오코너는 기원후 6년으로 추정했다. 또 바울로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제국]] [[시민권]]이 있었으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장면이 성경에도 몇 번 등장한다.[* [[사도행전]] 22장 22-29절에 보인다. 「(전략) 군인들이 바울로를 결박하자 바울로는 거기에 서 있던 백부장에게 "로마 시민을 재판하지도 않고 매질하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항의하였다. (중략) 파견대장은 바울로에게 가서 "당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사실이오?" 하고 물었고 바울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파견대장은 "나는 많은 돈을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소." 하고 말하자, 바울로가 "나로 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고 밝히니 바울로를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물러갔다.」(공동번역성서)] 바울로가 로마 시민권을 얻은 것은 그의 할아버지가 로마의 용병으로서 군에서 복무한 대가로서 그 가문에 주어졌다고 한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물론 몇몇 유대인의 선동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 로마 집행관에 의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 풀려나자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린 경우도 있었다(사도행전 16:22~39).] 이것으로 짐작건대 바울로는 [[유대인]] 혈통이었으나 조부 대부터 로마인이 되었으므로 유대인다운 소양은 물론 그리스어와 [[고대 그리스]]의 학문적 소양들을 익힌 듯하다. 그런 바울로가 언제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제자격인 [[루카]]가 쓴 사도행전에서는 가말리엘[* 당시의 유명한 랍비로 온건파 바리사이파의 수장이었다.]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바울로는 당시 진보했던 그리스 철학은 물론, 정통 유대교의 율법학에도 능통할 수 있었다. 실제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 보면 그의 철학과 율법학이 상당히 뛰어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엄격한 바리사이파로 활동했던 바울로는, 초기 그리스도교 여러 공동체 박해의 선봉에 섰다. 그 박해 중 하나는 사도행전에서 [[스테파노]]의 [[순교]] 당시 유대인 측의 증인으로 선 것이다. 바울로의 열성 있는 박해 탓에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각처로 뿔뿔이 흩어지자 그는 흩어진 그 그리스도인들까지 열정 있게 추적해 잡아들이려고 할 정도였으며, 바울로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자신이 유대교를 주위 사람들보다도 과하게 믿었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그 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다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4절)] 즉, 타고난 종교심 자체가 상당히 강한 사람--(종교 오타쿠)--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핍박과 옥고 등의 숱한 고난들과 생업에도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이 바울로의 과도한 종교심을 억제하여, 바울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 광신도화 되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