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울로 (문단 편집) === 현실 권력과 제도에 대한 복종 ===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3장 1절)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니 복종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여성관 못지 않게 현대에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바울로는 어차피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이 세상 체제는 끝날 테니까[* 그는 자기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리라 여겼다. ] 그러기까지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 현실 권력에 불필요하게 맞서기보다, 순응하며 복음을 최대한 널리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바울로는 예수의 재림을 자기 생전에 보려고 한 사람이다. 만방에 복음을 펼치면 예수의 재림이 앞당겨질까 생각해서 평생동안 이방인 선교를 하였다. 데살로니카서에서 신자들이 예수 재림 전에 세상을 떠난 신자들은 어떻게 되는거냐며 바울로에게 걱정하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의 재림을 자기들 생전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로마서 13장에 기술된 지도자에 대한 복종 구절은 마르틴 루터가 독일 농민 전쟁 당시 제후 편에 서는 근거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수백 년 뒤에는 [[나치 독일]]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대통령의 정치성향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해석이 밥먹듯 바뀌며, 한 사람이 대선 결과에 따라 로마서 13장에 대한 말을 바꾸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바울로는 특별히 노예제를 옹호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서간 가운데 배경 이해 없이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는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레몬서에는 그리스도인 필레몬에게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바울로를 찾아와 주인과 중재를 요청했는지, 이 노예를 회심시킨 뒤 '이제 노예가 아닌 형제처럼 대해주라'면서 필레몬에게 도로 돌려보낸다. 도망쳤다 도로 잡힌 노예는 심한 경우 사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필레몬의 인성과 자신의 사도로서의 끗발을 믿고 벌인 모험에 가깝다. 다행히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용서받았는지 골로사이서에서도 등장하고, 교회 전승에 따르면 훗날 에페소스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바울로는 고린토서 전서에서 노예 신자들에게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노예였다 하더라도 조금도 마음 쓸 것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이용하십시오."라고 말한다. 바울로가 현실의 불완전한 체제에 무력으로 저항하기보단 복음 전파와 그리스도교식 사해공동체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바울로의 생각엔 이 세상의 체제는 곧 없어지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올 것이므로 그때까지 주인이나 노예나 교회 안에서 서로 형제처럼 지내고 있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보다 이 세상의 체제는 훨씬 오래 갔고, 근대에 오면 노예를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 바울로가 쓴 내용을 핑계삼아 노예제를 옹호하는 일이 빈번했다. 노예제가 폐지된 현대에서는 이 내용을 시대적 한계로 해석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가하고 시사에도 관심을 갖기는 하되,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전 거쳐가는 중간 통로일 뿐이므로 여기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정체성을 확실히 하라 정도로 적용시킬 수 있다. 즉 그쪽에 집착하여 시간과 정력을 지나치게 쏟다가 보다 중요한 신앙생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라는 것. 이는 비단 이 영역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내용에 대해 '성스러운 정의의 계율'을 지키는, 즉 하느님의 뜻에 맞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권력에만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레위기에서는 이에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한다: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레위 19,15) > >그러나 이것은 권력자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정의에서 일탈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레위 19,15) > >통치자가 성스러운 정의의 계율을 지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처럼, 지상의 권세는 때때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 >그러나 통치자가 성스러운 정의에 반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처럼, 지상의 권세는 때때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 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는구나." (시편 2,2) "너희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기뻐하며,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두 뿔을 차지하지 않았느냐?" 하는구나." (아모스 6,13) >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통치자와 권세에 대항했으나 영벌에 처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상을 받았다. 사도 바오로는 지금 하위 권력에 대항하는 경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성스러운 질서는 예를 들어 왕에게 반하여 공작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이 상위 권력에 반하여 하위 권력에 복종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모든 권세는 성스러운 권력의 하위 권력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반하여 지상의 권세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로마서 주석. 1022, 102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