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울로 (문단 편집) === 바울로와 유대교 === >그 유다인들은 주님이신 예수와 예언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고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원수가 되었다는 부분은 영문판에서는 ‘opposed to everyone’이라고 번역된다.] > >또 그들은 우리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을 얻게 해주는 일까지 방해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죄는 극도에 달해서 마침내 하느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내리게 되었습니다. >---- >[[공동번역성서]],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2장 15~16절. 바울로의 생전에도 그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그는 예루살렘에서 난동에 휘말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그를 반유대주의의 선구자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다.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 >로마서 9장 3절.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바울로의 가혹한 언명은 기본적으로 '예수를 거부한 경우'에 해당한 것이지 근대적인 혈통적 반유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바울로는 타지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 유대인이 먼저 복음을 접할 우선권이 있다고 보고 반드시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먼저 복음을 전했으며, '내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지옥에 가겠다'고 할 정도로 동포애가 강했다. 이는 단순 립서비스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로마 공동체에게 보낸, 따라서 이방인 수신자들을 상정하고 있는 [[로마서]] 11장에서 바울로가 이방계 그리스도인을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로, 유대인을 '원 가지'로 비유하고는, '원 가지'가 다시 접붙여지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로에 대한 유대교 학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놀랍게도, 긍정적인 시각들이 발견된다.''' >바울로는 유대교 학자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은 근년에 들어 비로소 이루어졌다. 이 발전은 거의 2천 년간 계속된 침묵 이후의 일이기에 그만큼 더 기뻐해야 마땅하다. 여기서도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하자. 클라우스너는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재구성하고, 나아가 자기 견해를 밝혔다. 유대교가 바울로의 교설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물론 없지만, 바울로에게서 귀중하고 숭고한 사상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클라우스너는 그것들을 참 유대교적이라고 평가하고,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유대교의 영향을 촉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를 사도에게 돌렸다. 심지어 그에게 바울로는 "메시아 왕의 길을 닦는 자"이기도 하다.'''[* (책 속 주석)[[https://en.wikipedia.org/wiki/Joseph_Klausner|Klausner]], ''Von Jesus zu Paulus''(Jerusalem 1950) 553-61.] >쇱스의 판단은 다르다. 쇱스는 바우어와 연계하여 바울로를 에비온파{{{-2 (유대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대립시켰다. 이 대립으로부터 교회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바울로의 선포와 신학은 비유대교적이라고 본다. 만일 바울로가 유대교 품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유대교의 전령이 되었을 테고 유대교를 민족적 편협함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책 속 주석)[[https://en.wikipedia.org/wiki/Hans-Joachim_Schoeps|Schoepes]], ''Paulus, die Theologie des Apostels im Lichte der jüdischen Religionsgeschichte''(Tübingen 1959), 특히 299-314.] 반대로 벤-코린은 (클라우스너보다 더) 바울로에게서 유대교 신학자를 알아보거니와, 사도의 신학은 선교에서 태어나 자라났다는 것이다. 벤-코린은 율법에 대한 자신의 고뇌에 터해 바울로에게의 극히 개인적인 접근로를 열었다. 바울로가 [[의인(구원론)|의인]]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저 평화를 자신은 율법의 정통적 준봉에서 얻지 못했다는 벤-코린의 언명은, 바울로를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대화에 들여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벤-코린은 바울로 사도로 인해 유대교 신앙 방식의 소외가 발생했다는 부버의 주장도 배척한다. '''바울로 메시지의 새로움은 유대교 유산이 보존해 온 힘을 증언해 준다는 것이다.'''[* (책 속 주석) 같은 책 9f,89,214] >---- >요아힘 그닐카 {{{-2 Joachim Gnilka}}}, 《바울로》{{{-2 (Paulus von Tarsus: Apostel und Zeuge)}}}, 이종한 옮김, 22-23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