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스라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이라크 중세 바스라.jpg]] [[주바이르]] 동북부에 남아있는 옛 바스라 (البصرة القديمة) 유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libinabitaleb.jpg|width=350]]||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모스크 || 바스라는 [[수메르]]의 고대 도시들과 가까이 위치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바다 아래에 존재하던 땅이었다. 이후 수면이 낮아지며 그 자리에 땅이 생기게 되었고 중동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다. 바스라는 636년에 [[이슬람 제국]]의 군사 주둔지 ([[암사르]]) 및 경비 초소로 건설되었다. [[페르시아 만]]에 가깝고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및 동쪽의 [[국경]]에 접근이 쉬워서 점차 주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정치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으로써 [[이슬람 정복]] 당시 페르시아 전역의 본부와도 같은 곳이었고, 바스라 총독은 이라크에서 [[호라산]]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의 동쪽 절반을 다스리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656년에는 이슬람 제국의 첫 내전인 [[1차 피트나]]가 바스라에서 벌어진 낙타 전투와 함께 시작되기도 하였다. 바스라는 8세기부터 9세기까지 문화의 중심이었고, [[종교]]와 문예가 발달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가 바로 바스라 출신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9세기 말엽 흑인 노예 봉기인 [[잔즈 반란]]과 10세기 [[카르마트]]의 습격을 겪으며 경제적인 쇠퇴와 함께 토양의 염분화 조절이 실패하자 930년경 기존 도시를 버리고 현재의 위치에 새 도시를 세웠다. 옛 도시는 현대 [[주바이르]] 내에 유적으로 남아있고, 새 도시에는 1123년 성벽이 둘러졌다. 1258년 [[몽골 제국|몽골]] 침공기에는 바그다드의 선례를 보고 바로 항복하여 그와 같은 파괴와 학살을 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1411년 ~ 1432년까지 [[잘라이르 왕조]]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무역상들이 들어와 국제적 도시가 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파일:이라크 바스라 6.jpg|width=500]]|| || 영국 위임 통치기의 우표 || 뒤이은 영국의 [[위임통치]] 기간 동안 바스라는 [[제국주의]]의 중동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와 가까운 데다가 주요 [[항구]]도시이다 보니 [[근대]] 및 [[현대]]에도 이래저래 [[전쟁]]이나 [[혁명]]에 휩쓸린 이력이 있다. 근현대에서의 바스라와 관련된 주요 역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제1차 세계대전]] [[영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바스라 전투(1914년)|바스라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바스라를 점령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로의 보급물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 [[이란-이라크 전쟁]] 심심하면 [[이란]]의 포격을 받았고, "라마단 작전"이나 "카르발라 5 작전" 같은 여러 격렬한 전투의 전장이 되었다. * [[걸프전]](1991) 제 2의 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쟁에 휘말렸고 수많은 유적과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걸프전 중에 일어난 [[전투]] 중, [[쿠르스크 전투]]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라 불리는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Medina_Ridge|메디나 능선 전투(Battle of Medina Ridge)]]"의 무대가 바스라 근처이다. 걸프전이 끝난 후에는 바스라가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이 저항은 폭압적으로 진압되었다. 1999년에 다시 한번 저항 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역시 대량 처형 등을 통해 진압되었다. * [[이라크 전쟁]](2003) 바스라 외곽이 초기 이라크 전의 [[바스라 전투(2003년)|격전지]]가 되었다. * 바스라 전투(2008) 반미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를 바스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6일간에 걸친 전투에서 1,000명의 사상자가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