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가수) (문단 편집) === 1995~1997 고등학생 === 합격생 68명 중 실기 1등으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동네에 플랜카드가 걸리고 이장님이 돼지까지 잡아줄 정도로 경사스런 분위기였지만, 유독 바다 아버지만 반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낭랑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바다를 유독 예뻐했고, 바다가 예능 쪽으로 재능이 타고난 걸 알고 있었지만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재능만으로는 안 될 뿐더러 죽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이 바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기 때문에, 바다도 바다의 언니처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길 바랬다고 한다. 바다한테 대놓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훗날 바다가 밝히길 '예고 등록금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바다가 예술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한 그 다음날부터, 바다 아버지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밤무대를 다니며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바다 아버지는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3남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 업소와 지방 행사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고,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직 자식들만 생각하며 힘든 희생을 감내한 것이었다. 당시 바다 어머니는 약 달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사람의 약을 달여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학교 생활에 더욱 충실했다고 한다. 바다가 가수로 데뷔하고 난 뒤, 바다 아버지는 혹시나 가족사가 드러나게 되어 마음 고생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바다는 '환경이 힘들었을 뿐이지 마음은 가난한 적이 없었는데, 가난이 뭐가 창피하냐'고 당차게 되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저녁을 못 먹어서 집에 딱 하나 남아있던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걸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께 라면을 양보했다고 한다. 라면을 못 먹은 마음에 괜히 울쩍해서 집밖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마침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가 '오늘은 진짜 나가기 싫다'고 혼잣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한 남자고,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인 때문에 밤업소를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상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돈으론 가정 형편이 나아질 리 만무했고,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 그때까지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자신을 일찍 철들게 한 것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늘 학비를 늦게 냈는데 지역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한 적도 있었고, 어떤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학비를 끝까지 못 냈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성당에 다니는 어떤 분이 무기명으로 두 학기 등록금을 내주면서 그때 세상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바다는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항상 사회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두산 연강재단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을 돕는 등 후원활동과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시절, 공부로는 1등을 못했지만 실기는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몸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 만큼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A+를 받았다고 한다. 안양예고 학내 연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주로 서사극이 많았다고 한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작품을 올렸는데, 세익스피어 4대 비극부터 한국 고전은 물론이고 《산불》 같은 근대의 작품까지 올렸다고 한다. 3학년 마지막 작품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었다고 한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 분석을 전투적으로 많이 했었는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명작을 분석해보면 이야기가 선명하면서도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나중에는 단편 희곡까지 썼다고 한다. 또한, 연출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바다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다고 한다. 바다의 회고에 따르면, 연출은 단조로운 이야기 속의 무대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에 있어서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던 이유는, 고교 시절 연극에 집중했던 많은 것을 흡수하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발로 중심을 잘 못 잡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가 들어가 한 쪽 귀가 안 좋은데, 그때 평형 감각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려면 평형 감각이 필요한데 조금만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몸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심을 잡기 위해 뱃심을 키웠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