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교(불교) (문단 편집) == 기원 ==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 크리스찬 웨더마이어(Christian K. Wedemeyer)의 저서 《Making Sense of Tantric Buddhism: History, Semiology, and Transgression in the Indian Traditions》와 불교학자 이용현의 논문을 참조하여 딴뜨리즘(Tantrism)의 기원에 대한 학계의 주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교]] 딴뜨라(tantra, तन्त्र)의 기원에 대한 주장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였다는 '빌린 모델(a borrowing model)'과 두 딴뜨라 이면에 공통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기층 모델(a substratum model)' 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이 주장했다. '종교적 기층'이란 [[아리안족]]의 인도 아(亞)대륙 진출 이전부터 존재하던("pre-Aryan") 토착부족의 종교와 문화를 의미한다. 비(非) 아리안계 토착 부족들은 아리안 족의 진출 이후에도 주변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존속하였다. 이들 부족들의 문화에 담긴 [[여신]](女神) 숭배와 주술적 요소가 점차 아리안족의 [[베다]] 전통에 유입되었고 그 결과 힌두, 불교, [[자이나교]] 등에 딴뜨리즘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가설을 1980년대 후반부터 [[옥스퍼드 대학교]]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이 공격하였다. 샌더슨이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문을 품는 직접적인 이유는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된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었다. 샌더슨은 우리가 딴뜨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딴뜨라거나 바이슈나바 딴뜨라거나 불교 딴뜨라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딴뜨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기엔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딴뜨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딴뜨라들은 불교의 딴뜨라로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샌더슨의 이론 또한 루에그, 스페라, 데이비드슨 등에게 비판받았다. 웨더마이어 역시 힌두 샤이비즘과 불교는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기에 불교 딴뜨리즘이 전적으로 힌두 샤이비즘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어느 쪽이 옳든 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라뜨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나 아바야까라굽따(Abhayākaragupta) 등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위대한 학승들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을 문제 삼은 자료가 지금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딴뜨라 불교가 적절한 불교적 의미를 주는 상징주의에 의존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을 흡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명확한 의미가 그러한 요소들에 주어지면, 그들의 불순함은 제거되고, 그들은 불교의 이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상징들로 탈바꿈하였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이용현,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불교 딴뜨리즘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은 불교 역사의 서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세기 근대 서구학자들은 인도 불교의 쇠퇴와 불교 딴뜨리즘의 등장을 결부시켜 해석했다. 그들은 불교 딴뜨리즘이 힌두 샤이비즘에서 유래하였다고 규정하고, 샤이비즘적 요소의 도입이 불교 내부의 도덕적 타락과 정체성 상실을 초래하여 인도 불교가 쇠멸하였다는 서사 구조를 고안하였다. 또한 '생성-발전-번성-소멸'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역사관에 익숙했던 서구 학자들에게 딴뜨리즘의 성(性)적 요소는 서양 고전(古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명의 쇠락 징조로 해석되었다. 딴뜨리즘은 일종의 성적 타락으로 치부되어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 불교 소멸의 원인으로 채택되었다. 불교 딴뜨리즘으로 인도 불교의 쇠락을 설명하는 서술 모델(model)은 제국주의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20세기 초중반까지 서구 학계에 만연하였다. 그리고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물론이고, 초기에 서구와 일본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한국 학계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반면 인도 학자들, 특히 벵갈 출신 학자들은 딴뜨리즘을 불교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원시적(原始的)인 문화적 저류(undercurrent)와 연관시키는 정반대 모델을 내놓았다. 이들의 주장은 딴뜨리즘이 아리안족 진출 이전의 인도 토착 부족 문화에서 유래하였다는 기원설을 기반으로 한다.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부족 문화는 아리안족의 침공 이후에도 '종교적 기층', 혹은 '저류'를 형성하여 유지되면서 점차 주류 종교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기존 종교의 성격과 달리 민중 지향적, 모계 지향적인 딴뜨리즘이 등장하게 된다. 서구의 [[낭만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학자들도 이러한 인도 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한편 불교학자 정성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대승불교]]의 중관, 유식 논사들은 학자이자 동시에 밀교 수행자들이었다. 《유가사지론》으로 대표되는 유가행 이론의 완성 이후 이들은 유가행의 실천을 목적으로 밀교 의궤를 창안하였다. 또한 《대일경》, 《금강정경》과 같은 밀교 경전에 주석을 달았고, 바라밀승의 수학 이후 진언승을 수학하는 대승 교단의 현밀겸수(顯密兼修)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밀교의 교리적, 실천적 정통성을 보여준다.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186282|정성준, 《인도밀교의 성립에 나타난 후기중관파와 밀교의 교섭 고찰》]] [youtube(oeYaAPVJNdA)] [[합장]] 자세가 현교와는 약간 다르다. '금강합장'이라 해서 손가락을 교차시켜서 살짝 꼬는 듯한 자세로 합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