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한국당 (문단 편집) == 상세 ==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시절에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당했으며 실제로도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창당자금을 제공하고 공천자 명단, 당직 임명까지 관여한 관제야당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민주한국당 창당식.png|width=100%]]}}} || || {{{#ED2939,#bc103c '''▲ 민주한국당 창당식 모습'''}}} || 유치송이 바지 총재이고 [[신상우]] 사무총장이 실세로 알려졌으나 그 역시 안기부의 허수아비였다. 이러다 보니 '''민주한심당'''이라는 멸칭도 존재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의 탄압으로 [[양김]]이 정계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야당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든 인물들도 있었다. [[민주정의당]]에 가담한 구 신민당 의원들에 비하면 이들의 처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으나 결국 실질적 이미지는 '''힘없는 [[구색정당|어용 야당]]이나 [[비시 프랑스]] 격이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지만, [[1985년]] [[신한민주당]]이 창당되고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지역구 26명과 전국구 9명으로 35명이 당선되는 데 그치며 제2야당으로 전락하였다. 특히 서울특별시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3위로 낙선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타격이 컸다. 이후 소속 의원들의 탈당[* [[민주정의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일윤]], [[황대봉]] 등 한국국민당 출신 의원들은 국민당으로 복당.]이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이 148석의 민정당과 맞서는 103석의 거대 야당이 되는 반면 민한당은 3석[* 지역구 [[유치송]], 전국구 [[손태곤]], [[신동준(1932년 12월)|신동준]].]의 군소 야당으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그 해 3월 유치송은 민주한국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조윤형]][* [[조병옥]]의 아들이자 [[조순형]]의 형이다.]이 잠시 총재가 되어 신민당과 합당을 추진하였으나 선명야당을 표방한 신민당이 2중대 소리 듣던 민한당을 받아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조윤형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탈당하여 신민당에 입당했고, 그 해 9월 유치송이 다시 총재가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치러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재 유치송을 비롯해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득표율 미만 정당 해산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남은 인사들은 [[통일민주당]]에 합류하였다. 중앙당사는 창당 초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5-1 공평빌딩[* 현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터.]에 터를 잡다가, 1981년 5월 1일부터 영등포구 여의도동 13-31 기계회관으로 옮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