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노동당 (문단 편집) === 구 NL계와 PD계의 갈등 === * 해당 문서에는 'NL=종북'으로 퉁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NL계 인사들 중에서도 북한에 대한 시선은 한가지로 딱 잘라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북에 비판적인 인물들도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 당시 NL의 주류 노선은 결국 민족자주노선이 핵심이었다고 보면 될듯 싶은데, 그 연장선상에서 불평등 관계인 한미 관계를 바꿔야 된다는 노선도 나온거고, 북한도 독재는 하지만 그래도 자주 노선 하난 자기들 딴엔 맘에 들게 걷고 있고 같은 민족이니 감싸줘야 된다(?)는 식의 종북 소리 들을만한 노선도 떠들게 된 것. 물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수룩한 당원들과 후술된 몇몇 사건도 터지게 된다. 민주노동당의 소위 '종북' 논란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분당되는 원인인 '당권 헤게모니 다툼'과 무관하지 않다. 1997년만 해도 [[PD(정파)|PD]]계열이 창당에 주도적이었고, [[NL(정파)|NL]]은 조금 '[[친북]]'적인 노선을 걷는다고 본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비판적 지지]]라 하며 우호적이었는데[* 김대중은 1980년대에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미국에게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뒤, 미국으로 망명을 갔고 이후 1985년 총선을 앞두고 귀국했을 때에도 미국 저명인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당선되고 나서도 강한 [[친미]]적 정책을 취했고, 정작 [[한총련]]은 여전히 [[이적단체]]로 내버려두는 등 선을 긋는 입장을 취했다.] 김대중 후보 당선 후 남북 화해 무드와 한편으론 친미적 행보도 여전히 반복하는 흐름 속에 NL계도 본격적으로 실질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다는 판단 아래 남북정상회담과 [[군자산의 약속]] 등을 배경으로 의회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과거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의 민주노동당 참여[* 물론 당시 다수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PK 지부에선 어느정도 영향력은 발휘하는 수준은 되었다. ~~물론 2000년 총선 당시 울산북구 경선에서 쓸데없는 집념을 발휘하는 바람에 민노당의 원내진출이 실패했다는 흑역사는 있었다.~~]대략 [[2001년]]부터 본격적인 민주노동당 입당이 시작되었고 점점 지부를 차지해간다. 그렇게 2000년대 초중반 PD계 혹은 중립파가 대거 의원직에 당선되었지만, 그 직후의 당직자 선거에서 NL계가 강력한 조직력[* PD계가 평소에 대립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잘 뭉치는 NL계와는 달리 잘 뭉쳐지지 않다보니 조직력이 약해서 득표에서 다수를 차지하고도 당직자직에서 대거 밀려났다는 후문이 있다.]을 바탕으로 당직자 직 다수를 차지하며 [[당권]]을 쥐게 된다. 이들은 PD 대비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강하긴 했지만, NL도 그냥 NL이라고 퉁쳐서 그렇지 그 안에도 이념 갈등이나 계파 싸움이 존재했고 무조건 하나로 뭉치는 집단은 아니라 특정 계파(이를테면 [[경기동부연합]])가 특정 지부를 차지하려고 하면 타 계파가 이를 막기 위해 PD계나 [[다함께]] 등 성향이 다른 정파와 손을 잡는 일도 '가끔씩'은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 원래 [[광주전남연합]]은 [[인천연합]]과 연계가 있었지만 [[인천연합]]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하게 되면서 [[경기동부연합]]하고 짝짜꿍하게 되었다.]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며 2006년 당직자 선거에선 결국 [[경기동부연합]]계가 당권을 차지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