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족문제연구소 (문단 편집) === 이갑성 친일 의혹 주장 논란 ===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독립운동가 [[이갑성]]의 친일 의혹을 제기했다. 아래는 의혹의 주된 내용과 그에 대한 반박이다. 첫째로 이갑성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의 촉탁(비서)이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총독부 자료를 검토한 결과 마루야마의 촉탁 명단에는 없었다. 비공식적인 촉탁이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아도 마루야마와 이갑성의 접점은 없다. 둘째로 193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할 당시 창씨명(岩本正一, 이와모토 쇼이치)으로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했으며, 그 근거로 명함이 발견되었으나 호적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갑성은 1940년 7월 23일에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한 명함에 적혀있던 이름으로 볼 때 만주에 있었던 기업으로 추정되는 '일만 산업공사'는 존재한 적이 없는 기업으로 밝혀졌다. 셋째로 미쯔미시 주식회사의 신경 출장소장을 역임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미쯔비시 본사의 사료를 검토한 결과 신경 출장소는 물론 어느 출장소에서도 이갑성을 비롯한 조선인의 근무기록은 없었다. 오히려 1934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국외에 거주하는 조선인 중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등의 이유로 주시해야 할 인물들을 기록 발행한 <국외 용의 조선인 명부>에 이갑성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부의 기록을 보면, 1930년대 이갑성이 상해에 거주할 당시 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40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한 기록도 있음을 볼 때, 이갑성의 일부 관련자의 증언만을 토대로 한 친일 의혹은 근거가 없다. 위 내용은 2005년 3월 1일에 삼일절 특집으로 방송한 SBS 뉴스 추적을 토대로 서술되었다.[[http://allvod.sbs.co.kr/allvod/vodEndPage.do?mdaId=22000002400|#]] 결국, 민족문제연구소 등 여러 방면에서 오랫동안 친일파라는 공격을 받아온 이갑성은 SBS의 심층 취재와 2006년 '민족대표 33인의 재조명 학술대회'를 통해 논박되면서 뒤늦게 친일파 누명에서 벗어났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735&yy=2010|#]]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611&yy=2010| ]] 1940년대의 이갑성의 활동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부분이 있어서 일부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이 시기에 그가 친일파 활동을 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현재까지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는 상태나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이갑성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아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는 이갑성의 친일 의혹 제기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식적인 견해 표명 없이 은근슬쩍 뺀 것은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