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제(레) (문단 편집) ==== [[꽝쭝|응우옌반후에]]의 도움과 즉위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uang_Trung_statue_03.jpg|width=300]] || || 북평왕 응우옌반후에 || 현종은 응우옌반후에와 대면한 약 2주 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종의 사망에 관해 《대월사기전서속편》은 다만 갑자기 병이 나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만 적고 있다. 반면 《[[청사고]]·월남전(越南傳)》에는 현종이 놀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죽게 된 것이라고 적고 있다. 레티응옥헌은 황사손인 민제를 매우 싫어해 그를 황제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며, 때문에 응우옌반후에에게 계속 민제에 대해 험담하였다. 응우옌반후에는 의심스러워서 황사손이 즉위하는 예식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여러 신하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분분히 레티응옥헌을 지탄하였다. 레티응옥헌은 두려워서 할 수 없이 응우옌반후에에게 황사손을 황제로 옹립하도록 청했다. 이에 민제는 성명을 레주이끼로 고친 뒤 응우옌반후에의 도움을 받아 제위를 계승하였고, 이듬해 연호를 찌에우통으로 고쳤다. 응우옌반냑은 응우옌반후에가 승세를 타고 탕롱을 공격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북하 지역에서 할거할 것을 우려해 역시 군사를 이끌고 탕롱으로 갔다. 민제는 백관을 인솔하여 교외로 나가 응우옌반냑을 영접하였고, 응우옌반냑은 찐 주의 부에 들어가 점거하였다. 그런데 떠이선 군의 향수병이 심하자 응우옌반냑과 응우옌반후에는 모두 민제의 제위를 승인한 뒤 함께 남하(南河) 지역으로 회군하였다. [[타이득|응우옌반냑]]의 사위인 부반념은 응우옌흐우찐의 사람됨을 매우 싫어하였으므로 고의적으로 응우옌흐우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응우옌흐우찐은 떠이선 군이 철군하고 나서 그것을 알았으나 그들은 이미 멀리 떠난 뒤였다. 응우옌흐우찐은 원래 찐 주 휘하의 부장이었으므로, 찐 주의 지지자들은 응우옌흐우찐이 떠나지 않은 것은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라고 보아 그를 체포하려고 했다. 응우옌흐우찐은 할 수 없이 탕롱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