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정문서 (문단 편집) == 가치 == 당시 신라 사회의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애석하게도 한반도의 고대사 사료는 오랜 기간 외침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매우 지엽적인 내용만 밝혀져 있는 것이 현실이며, 특히 신라시대 당대의 글은 [[금석문]]과 [[목간]]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유물 하나하나가 감지덕지일 따름이다. 비약이 아니라 '''제1-2신라문서가 신라의 지방행정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는 사실상 유일한 1차 사료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대사 연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 사서는 모두 후대인 고려 시대에 편찬된 것이고, 그 사이의 [[후삼국시대]]와 [[여요전쟁]] 속에서 많은 원사료들이 손실된 상태에서 편찬되어왔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누락 또는 생략되어 있으며, 다른 사서와 충돌하거나 진위 여부가 불확실한 내용도 있다. 다만 민정문서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뚜렷하다. 본래 존재하던 문서의 파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용이 간결하며, 따라서 이것만으로 당시 신라 전체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서원경 4개 마을이 당시 신라 전체에서 부유한 지역일지, 아니면 평균 소득 이하의 지역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워낙 여기저기 파편적인 기록이 많이 있어서 대략 도시의 윤곽이나마 그릴 수 있지만 그 외 지방도시들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일단 이 문서에 나오는 서원경은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격인 신라의 [[소경]]이므로 일반적인 지방도시보다는 행정구역의 격이 높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원경 '근교'의 4개 마을이므로, 도시 근교의 특별 관리되는 지역일지 그냥 농촌일지조차 알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