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애니 (문단 편집) == 기타 == * 출판사에서 유행하는 스토리를 요청하면 약 1시간 만에 1권 분량의 스토리를 완성한 뒤 그림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빠른 속도라 한달에 5편 정도의 작품을 낼 정도였고 다른 작가들이 스토리 의뢰를 하면 써주기도 했다고 한다. * 남편인 김기백 작가 역시 시대를 풍미한 만화가다. 1935년 생이며 시사만화가에서 시작했으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철도청을 풍자한 만화로 인하여 필화사건을 겪으며 아동만화가가 되었다. [[김영하(만화가)|김영하]] 화백이 그의 제자였으며 김기백도 당대 유명 만화가였다. 둘리의 아버지 [[김수정(만화가)|김수정]] 작가가 중3 때 만화가가 되고자 그를 찾아가려 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17년 7월 11일 작고. * 카메라 앞에서 별로 긴장하지 않는 타입이라 방송국 PD들의 섭외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엄희자, 장은주 작가와 함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 검열이 심했던 당시, 남녀의 사랑은 물론이고 우정까지도 검열될 정도였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하얀 돛배 같은 백합 만화들과 여학생남학생 같은 명랑 만화들을 그렸다고 한다. 검열이 너무 심했고[* 부잣집인 것이 티나는 경우 사치풍조라고 퇴짜를 놔서 배경을 외국으로 설정해야했다고 한다.] 수정을 못하게 원고에 줄을 그어대기까지 해서 하소연하러 오는 만화가들이 있었다고 한다. 요령이 많았던 민애니 작가는 조언을 해주곤 했다고. * 한국 만화 최초로 미국시장에 진출할 예정이었다. 10년의 공백 이후 처음 낸 작품의 번역본이 반응이 좋았고, 40개 주의 초등학교에 내기로 방향이 잡혔지만 당시 미국 측 출판사가 당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입주해있었고 [[9.11 테러]]로 인해 어렵게 되었다. [[분류:만화가]][[분류:대한민국의 여성 유튜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