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중관계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KvyrK2ZB2f0)]}}} || || '''{{{#39386e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보는 미중관계}}}''' || 이르면 19세기 후반, 늦어도 [[제1차 세계 대전]] 후부터 미국은 당대 열강 중 하나이자 강대국으로 등극했고[* 경제력,산업력으로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열강에 필적했다. 다만 미국은 고립주의 정책으로 2차대전 이전까지는 다른 나라에 개입하길 꺼렸다. 1차대전 주요 승전국에 국제연맹 창설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국제연맹 가입을 거절했던 이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여 1949년 소련의 핵개발 성공 이전까지 4년 동안 압도적인 미국의 시대였으며 이후 냉전 40년동안 미국과 소련은 세계를 양분하고 대립하였으나 소련이 붕괴 된 후 미국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의 후폭풍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맞아 미국의 국력이 저하되는 듯 싶었으나 셰일혁명을 통해 천연 자원의 패권을 다시 주무르고 경제위기도 타파하면서 미국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이름이 지나치지 않게 됐다. 세계의 모든 뉴스에서 유일하게 미국만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으며 이는 무한할 것이라고 보는 관측마저 나왔다. 미국과 중화민국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일본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으며, 중국이 대륙을 장악한 후에도 미국의 수교국은 [[대만]]이었으나, [[1979년]]에 중국과 정식 수교관계를 맺고 대만과는 단교한 상태다. [[파일:external/farm7.static.flickr.com/5952033088_36e5e1d948.jpg]] > 이 사람은 [[미군|당신]]의 친구입니다. > [[국민혁명군|중국인]]. > '''[[중일전쟁|그는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동맹국인 중국 병사의 사진을 첨부한 미국의 포스터. 마찬가지로 소련과도 미국은 동맹이었으므로 러시아인에 대해서도 저런 포스터를 뿌렸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손잡아서 박살내려는 일본군과 중국군이 헷갈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때의 중국은 국민당의 장제스가 지배하던 '''[[중화민국 국민정부|중화민국]]'''이었고, 2차대전에서 미국과 중화민국이 승전한 후, [[국공내전|장제스는 정권을 공산당 마오쩌둥에게 빼앗기고]], 공산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바뀌며 미국과 적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6.25 전쟁|한국전쟁]]은 치열하게 미국-중국 양국이 서로 참전하여 싸운 사례로 뽑힌다. 물론 [[국부천대]]를 한 [[대만|중국]]은 여전히 동맹이었고 미국도 국부천대한 중국을 인정했지 공산당 중국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현재 중국은 2000년대 이후부터 세계의 새로운 2인자로 부상하고 있으며, [[메이드 인 차이나]]나 [[대륙의 기상]]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지만 현재 중국의 인식이 미국 다음가는 강대국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몇몇 산업기술을 제외하고 국방기술이나 기초과학 면에서도 주변국들을 앞서고 있다.[* 사실 경제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던 시절에도 중국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양산하고 우주개발을 연거푸 시도하는 등 이미 그 시절부터 기초를 탄탄하게 쌓아놓고 있었다. 중국이 공산권 국가로서 형님으로 모시던 소련도 중국을 호구로 취급하며 찬밥 대우를 했지만, 중국은 친소련 노선을 벗어나 핵개발도 독자적으로 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