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일화친조약 (문단 편집) == 기타 == * 일본이 서양세력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 이 조약의 기본 방침은 [[존 만지로]]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항목 참조. * 미국은 [[청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해 태평양 항로를 필요로 하였다. 당시 증기선에 보급을 위한 기항지로서 일본의 항구가 절실했다. 특히, [[각기병]]이나 [[괴혈병]]의 예방을 위하여 야채나 육류의 섭취가 필요했다. 또한 북태평양에서 [[고래기름]]을 목적으로 한 [[고래잡이|포경]]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국교가 없는 상태에서 자국의 포경 선원의 인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불편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페리의 통상 교섭이 이루어졌고, 무리한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모다·하코다테가 개항 항구로 선정된 것도 보급의 편의를 중시한 것이었다. * 이 조약이 체결되기 3년 전(1851년)에 출간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소설)|모비 딕]] 24장에서는 쇄국 정책을 펼치던 일본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이 조약을 맺게 된 계기가 포경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위에 나온 [[존 만지로]] 역시 14세에 고기잡이하러 나갔다 조난되어 미국 포경선에 구조된 인물이다. > '''만일 겹겹이 문을 걸어 잠근 나라인 [[일본]]이 방문객을 환대하는 날이 온다면, 그 공은 오로지 포경선에 돌려야 할 것이다. 포경선은 이미 일본의 문지방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 문학동네 판 모비 딕 1권 219페이지, 역자 황유원 * 향후 수정되고 보완되는 [[미일수호통상조약]]과는 달리, 이 미일화친조약은 미국의 보급 기항지 필요성이 다급했는지, 개항이나 통상 등의 쟁점에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조약은 아니었다. * 미국은 일본에게 개항과 통상을 요구했지만, [[존 만지로]]에게 미리 들은 정보에 의하면 미국에게 개항은 시급한 사항이지만, 일본의 쇄국 정책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통상까지는 바라지 않을거라는 것이었다. 에도 막부는 [[페리 제독]]이 통상 문제를 꺼내들었을 때는 딱 잘라 거부했고, 페리 제독도 통상은 시기상조라 여기고 "통상 문제는 이것으로 끝내죠."라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 [[시모다]] 항의 경우, 고쿠센지에 첫 미국 영사관이 수립되고 [[러일통상조약]]도 여기서 맺어졌지만, 1859년 6월, 외국 교역을 위한 [[요코하마]]가 개항하면서 5년만에 닫히게 되었다. 하코다테는 지금도 일본의 주요한 항구이다. 시모다는 개항장 이전 후에도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미코모토시마 [[등대]]가 1870년 일본 최초로 건립되었다. * 일본어 조약서 원본은 [[에도 막부]] 말기 [[에도성]] 화재로 소실되었다. 조약서 원본 중 미국측 것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존한다. 위의 문서는 복제품이다. * 87년 후인 1941년 일본은 미국을 [[진주만 공습|공격했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자폭탄|패배]]하여 또 [[일본의 항복|조약]]을 맺고, 또 [[GHQ|미군정]] 하에 놓였다.[* 심지어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던 당시 미 해군은 과거 페리 제독의 군함에 걸려있던 성조기를 떼어와서 보란듯이 걸어놓기까지 했다(...).] [[분류:1854년/사건사고]][[분류:에도 시대]][[분류:내전 시대]][[분류:미일관계]][[분류:19세기 협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