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사 (문단 편집) === 실재와 상징: 성체성사의 실재적 요소와 상징적 요소 === 주의를 주자면, 성체성사에서 '상징'이라는 키워드가 아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가톨릭 신학에서 말하는 성사{{{-2 (sacramentum)}}}는 '상징적인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징'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해버리면 '성사'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성체성사에서 무엇이 상징적인 것이고 무엇이 실재적인 것일까? [[토마스 아퀴나스|천사적 박사]]의 간단명료한 설명을 살펴보자. >Una ratio est, quia tria sunt in hoc sacramento: unum quod est sacramentum tantum, aliud quod est res tantum, aliud quod est sacramentum et res. Sacramentum tantum sunt species panis et vini, res tantum est effectus spiritualis, res et sacramentum est corpus contentum. >---- >왜냐하면 이 성사에는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sacramentum tantum{{{-2 (단지 성사)}}}이고, 다른 하나는 res tantum{{{-2 (단지 실재)}}}이며, 다른 하나는 res et sacramentum{{{-2 (실재 겸 성사)}}}이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2 (species)}}}은 sacramentum tantum{{{-2 (단지 성사)}}}이며, 영적인 효과는 res tantum{{{-2 (단지 실재)}}}이며, {{{[}}}그리스도의{{{]}}} 몸은 res et sacramentum{{{-2 (실재 겸 성사)}}}이다. >---- >[[토마스 데 아퀴노]], [[https://isidore.co/aquinas/SSMatthew.htm#26|《Super Evangelium S. Matthaei lectura》{{{-2 (마태오 복음서 주해)}}} Caput 26 Lectio 4]] >in hoc sacramento tria considerare possumus, scilicet id quod est sacramentum tantum, scilicet panis et vinum; et id quod est res et sacramentum, scilicet corpus Christi verum; et id quod est res tantum, scilicet effectus huius sacramenti. >---- >이 성사 안에서 세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즉 sacramentum tantum{{{-2 (단지 성사)}}}은 빵과 포도주, res et sacramentum{{{-2 (실재 겸 성사)}}}은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 마지막으로 res tantum{{{-2 (단지 실재)}}}은 이 성사의 효과이다. >---- >[[토마스 데 아퀴노]], [[https://isidore.co/aquinas/summa/TP/TP073.html#TPQ73OUTP1|《신학대전》 제3부 73문 6절]] 즉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ㄱ. 빵과 포도주의 형상{{{-2 (species)}}}: 이것은 실체변화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res{{{-2 (실재)}}}를 상징한다. 즉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상징적인 표지'일 뿐이다. 그렇기에 sacramentum tantum{{{-2 (단지 성사)}}}이다. ㄴ. 그리스도의 몸과 피: 이것은 형상{{{-2 (species)}}}이 가리키는 res{{{-2 (실재)}}}이며, 또한 그 형상{{{-2 (species)}}}들 안에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의 형상{{{-2 (species)}}}이라는 sacramentum{{{-2 (성사)}}}을 먹는 사람은 그 안에 담긴 '몸과 피'라는 res{{{-2 (실재)}}}를 정말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몸과 피'는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 곧 '교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몸과 피'는 형상{{{-2 (species)}}}이 가리키는 res{{{-2 (실재)}}}인 동시에,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을 가리키는 sacramentum{{{-2 (성사)}}}이다. 따라서 '몸과 피'는 res et sacramentum{{{-2 (실재 겸 성사)}}}이다. ㄷ.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것: 이것은 '몸과 피'가 상징하는 res{{{-2 (실재)}}}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신 신자는 그 효력에 의해서 정말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결합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성체성사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효과이다. 이것은 무언가를 상징하지 않으므로 res tantum{{{-2 (단지 실재)}}}이다.|| >빵과 포도주의 분리는 몸과 피의 분리의 성사적 상징이다. 성사는 바로 그 본성상 하나의 '표지{{{-2 (signum)}}}'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축성이 이루어진 다음에 두 가지는 각기 그리스도의 몸과 피 및 그분의 영혼과 신성 전체를 담게 된다. 형상{{{-2 (species)}}}에 의해 지시된 실재{{{-2 (res)}}}는 우리가 지금 흠숭하고 경배하는 참된 하느님이다. 그러나 이 실재는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결실'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과 영광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측면들은 모두 12세기 신학자들의 연구의 대상들이었다. 그들은 성사론에서, 성사 자체{{{-2 (sacramentum trantum)}}}, 실재와 성사{{{-2 (res et sacramentum)}}}, 실재 자체{{{-2 (res tantum)}}} 등 전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사란, 그 내밀한 본성 때문에, 하나의 상징, 즉 그 성사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의 표지이다. 세례성사에서 '성사 자체'는 물을 붓는 행위 자체와 {{{-2 (영혼의 내면 정화를 지시하기 위해 선언되는)}}} 말뜻이다. 세례성사의 특성은 '실재와 성사'이다. 그 궁극의 실재{{{-2 ('실재 자체')}}}는 영혼이 선물로 받게 되는 은총인 신적 생명이다. 성체성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사 자체'는, 축성의 말을 통해 몸과 피 사이의 분리를 의미하게 되는 가견적{{{-2 (可見的)}}} 형상들{{{-2 (빵과 포도주)}}}이다. 그러나 일단 축성되면, 빵과 포도주는 각자 피에서 분리된 몸과 몸에서 분리된 피를 상징하게 된다. 이 성사적 분리는 갈바리아 산상에서 죽은 그리스도 자신{{{-2 (Christus passus)}}}이 되고 과거의 기념이 된다. 각각의 형상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흠숭하고 있는 하느님으로서, 바로 '실재와 성사'이다. 실상 그것은 성사에 의해서 의미되는 실재{{{-2 (res)}}}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다른 어떤 것의 상징{{{-2 (et sacramentum)}}}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재 자체'는 모든 은총의 주인께서 나누어 주는 은총과 영광이다. >---- >James A. Weisheipl, OP.,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 생애, 작품, 사상》{{{-2 ''Friar Thomas D'Aquino: his life, thought, and works''}}}, 이재룡 옮김, 성바오로, 2012, pp.288-289 이 구분을 이해한다면, 양형 영성체에 대해서 교도권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간단하게 이해 가능하다.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표지로서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1항. [[https://missale.cbck.or.kr/Ebook|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res tantum은 단형 영성체이든 양형 영성체이든 동일하다. 그리스도와 신자를 결합시켜 한 몸을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형이든 양형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표지라는 면에서는, 곧 빵의 형상이 몸을 상징하고 포도주의 형상이 피를 상징한다는 면에서는, 둘 다 영하는 것에서 더욱 "드러나고" "표현되며" "나타나기 때문"에, 양형 영성체는 "더 충만한 형태"이다. 안타깝게도 스콜라학자들과 [[토마스 아퀴나스|천사적 박사]]의 설명이 오늘날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충분히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든 평신도들이 질료{{{-2 (materia)}}}, 형상{{{-2 (forma)}}}, 형상{{{-2 (species)}}}, 우유{{{-2 (accidens)}}}, 실체{{{-2 (substantia)}}} 같은 스콜라학 용어들을 학습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형이상학 용어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실질적으로 아예 교육 시도조차 안하고 있으므로 문제이다. 그렇기에 쉽게 '성체는 {{{-2 (그리스도의 현존을 배제하는 의미에서)}}} 상징이다'라거나 '성변화 때 {{{-2 (현대 물리학적 의미에서)}}} 물질적 구조가 바뀐다'는 식의 극단주의로 빠지거나 '의미변화'나 '목적변화' 같은 유행하는 설명에만 의존한다. 비록 후자{{{-2 (의미변화, 목적변화)}}}는 이단적인 설명이 아니며 제대로만 학습된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천사적 박사]]의 성사론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이해를 깊게 해주지만, 정작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할 토마스주의 성사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실종되면 공허해질 뿐이다. 실천적인 면만 보더라도, 교육의 실종은 성사론과 교회론의 불가분적 연결을 망각시켰고, 양형 영성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성찬의 개인주의화를 가져왔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에서 쇄신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곧,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쇄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설명들을 케케묵었다며 치워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교부들과 스콜라학자들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인 ressourcement{{{-2 (원천으로의 회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