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희상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이 총재로 있는 [[평화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김문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홍문종(정치인)|홍문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이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날 아버지 묘소에 가서 "아버지! 제가 간 길이 옳았죠!" 라고 오열했다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현직 국회의원인 홍문종과의 공천경합에서 이겨서 출마했고 무소속 홍문종, 한나라당 김문원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자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홍문종이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온 강성종을 상대로 이겼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홍문종을 상대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2005년에는 전당대회를 통해 [[열린우리당]] 의장이 되었으나, 연이은 재보궐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정세균]] [[원내대표]]에게 의장직을 물려주고 사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김상도 후보를 상대로 당선되었다. 이후 18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을 지냈다. 다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다시 김상도 후보를 꺾고 당선, 5선 의원이 되었다. 이어 열린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 지도부가 사퇴하자 첫 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계파색이 옅었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후문.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사퇴하자 두 번째로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정세균]] 상임고문, [[원혜영]]과 더불어 당내 여러 인사들과 친화력이 높아 당내 대표적인 관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범 친노계 인사로 꼽힌다. 2014년 말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땅콩회항 사건]]이 터진 가운데 2004년, 처남의 [[대한항공]] 취업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6&aid=0010107252|#]] 이후 2015년 전당대회에서 열린 당 대표 경선에서 [[문재인]] 의원이 [[박지원(1942)|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누르고 승리하면서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21/2016/04/14/2016041401071103025001_b_99_20160414141233.jpg|width=100%]]}}} || || {{{#cfa547 '''△ 2016년 4월 13일 6선 당선 직후 기뻐하며'''}}}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됐는데 "도대체 왜 짤린 거지?"가 대체적인 전문가의 의견이다. 취업 청탁 의혹이 있지만 이미 12년이나 지난 문제일뿐더러, 문희상의 지역구에 딱히 대체할 인물도 없어서[* 기껏해야 의정부시장인 [[안병용]] 정도인데, 안병용은 정황상 3선 끝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분개했다고 한다. 결국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었고, 6선에 성공했다. 야권의 승리와 더불어서 2016년 4월 현재 20대 국회의 유력한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계파색이 옅고 이제 나이도 많아서 [[이석현(정치인)|이석현]], [[정세균]]보다 정계은퇴에 대한 부담도 적기 때문. 다만 2004년 취업청탁에 대한 구설수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의장직을 건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에게 패배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가 되었다. 사실 일본통까지는 아니어도 일본과 나름대로 연이 있는 인물이다. 5월 17일날 열린 일본과의 외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한일 양국, 한미일 삼국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위안부 합의]]를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특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재협상 등의 요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되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경우 회담에서 논의 되지는 않았지만, 추후 유지 여부는 새 정부가 정할 일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아베 신조]]와의 만남에서 아베는 높은 위치의 의자에 앉고 문희상 특사는 낮은 의자에 앉게 해서, 일부러 이렇게 무시한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1125483|MBN 기사]]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23602.html|여기서도 문희상이 앉았던 의자와 똑같은 의자에 앉았고,]] 이때도 홀대론이 나왔다. 2017년 국회 본회의 출석율 100%를 기록했다. 다선의원들이 대체로 정당 활동이나 지역구 활동에 전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기록이다. 문 의원을 제외하고 출석율 100%를 기록한 의원들이 모두 20명인데 모두 초선이나 재선, 높아봐야 3선 의원들이다. 결국 [[20대 국회]] 4년 임기 동안 본회의 출석율 100%를 기록한 40명 중 1명이 되었다.[* 사실 후반기 2년의 경우는 [[대한민국 국회의장|의장]]이었던지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봉]]'''을 휘두르러 출석해야 하는 입장이긴 했다. (실제로 문 의장은 타의로 사회권을 [[주승용]] 부의장에게 넘겨야 했던 몇 번을 제외하면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본회의를 직접 개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