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용식 (문단 편집) === 2010년대 이전 === 1959년 9월 23일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주교육대학교광주부설초등학교]], [[살레시오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국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85년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1992년부터 나우콤에서 창립 멤버로서 근무하였고[* 문용식이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경력이 있다는 점도 나우누리에 찬우물 정치 동호회의 존재 등 진보성향이 강한 PC통신 유저가 타 통신에 비해 유독 많았던 것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PC통신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다 2001년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된다. 그가 대표로 재직하던 시기 [[피디박스]], [[클럽박스]] 등의 서비스를 런칭하여 텍스트와 사진도 공유하기 어렵던 시절 개인 간 동영상 공유 채널로서의 역할을 하며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으게 되고, 뒤이어 실시간 개인방송 채널인 [[아프리카TV]]를 출시하여 대박을 터뜨린다. 이후 방송인을 후원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이자 지금은 매우 보편화된 수익모델인 [[별풍선]]을 최초로 도입하여 전 세계적으로 [[개인방송]] 및 디지털 서비스 수익구조 형성 사례로서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저작권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에 진보진영에서는 아프리카TV에서 촛불집회 생중계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보복성으로 구속시켰다며 정치적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2008년 6월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져 '저작권법 위반'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웹하드 8개 업체에 대해서 수사, 5개 업체의 대표 및 관계자에 대해서 구속 수사를 벌였는데, 이 수사는 영화인협의회의 저작권 침해 고소에 따른 수사였다. 당시에 웹하드 업체들이 헤비업로더에 돈이나 포인트 등을 주고 불법 영화 파일의 업로드를 주도, 주선했다는 혐의와 불법 콘텐츠의 유통을 방조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는 피디박스를 통한 불법복제 파일공유가 대세이긴 하였으나, 피디박스의 강력한 금칙어 필터링과 강제 파일 삭제 그리고 메타데이터 분석을 통해 강제로 '그린파일'로 분류해버리는 등 '''가장 규제가 심했던''' 서비스였다. 이에 따라 필터링이 허술한 다른 웹하드와 P2P, 애니메이션 등은 IDISK 등으로 공유 세력이 이미 이동한 후였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가 다소 작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심지어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피디박스의 경우 업로더에게 이용자들의 다운로드 댓가로 다운로드 상품권을 지급하기는 하였으나 '''현금을 지급한 사실은 없다'''.[* 당시 수사 대상이었던 8개 업체는 다음과 같다. 나우콤(피디박스 클럽박스), KTH(아이디스크), 소프트라인(토토디스크 토토팸), 미디어네트웍스(엠파일), 한국유비쿼터스기술센터(엔디스크), 유즈인터렉티브(와와디스크), 아이서브(폴더플러스), 이지원(위디스크).] 또한 당시에 IDISK로 유명한 [[KT알파|KT하이텔]]은 유일하게 불구속 수사여서 특혜 논란이 있었고, 특히 광우병 집회 등 반MB 집회에 활용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아프리카TV]]를 통해 거리 시위를 생중계하는 붐이 있었는데 이에 따라 이 플랫폼을 개발 및 제공한 나우콤 및 문 대표를 일부러 타켓팅한 검찰의 기획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재판부는 1심에서 문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천만 원을 선고했고, 2심인 항소심에서 벌금 천만 원만 선고, 3심에서 2심 판결 그대로 확정되었다. 문용식 입장에서는 상기 업체들 중 가장 강력하게 필터링을 했고, 직접적인 고소의 혐의에 해당되지 않았고 본인이 계속 밝힌 대로 수사 당시 가장 협조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구속당해서 억울할 만도 하다는 여론도 많았다. 결국 구속된 5개 업체 대표 중 문 대표를 제외한 4개 업체의 경우 상기한 '불법 헤비 업로더'를 사주한 혐의가 인정되어 3심에서 징역 및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 이후 2011년에 문용식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과 대주주인 금양통신 지분 대부분을 [[서수길]] 전 [[위메이드]] 대표가 95%를 소유한 쎄인트인터내셔널에 약 170억원에 매각하고, 또다시 수사에 걸릴 건수를 없애버리기 위해 웹하드 등의 서비스를 (주)제타미디어로 분리 독립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지분 매각에 따라 2011년 나우콤 대표직을 [[서수길]]에게 사실상 인계하고,[* 이후 나우콤의 행보는 [[아프리카TV]]문서를 참조. 그래서인지 문용식 원장이 나오는 영상에 가끔 '우가우가 아저씨'라고 댓글이 달리곤 한다(...).] 나우콤 대표직에서 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