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왕(발해) (문단 편집) == 외교 == [[당나라]], [[신라]]와 본격적으로 통교하였으며, [[일본]]과도 활발히 교역하면서 국서를 보냈는데 여기서 '''고려국왕 대흠무'''로 자신을 지칭해 [[고구려]] 계승 문제에서도 중요한 [[사료(역사)|사료]]로 취급받는다. 또한 《[[속일본기]]》 기록에 문왕이 '천손'을 자칭하자 일본 조정 입장에서 불쾌해 했다는 식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일본이 신라를 치려고]] 준비할 당시 아쉬웠는지 일본이 먼저 발해에 도와달라 사신을 보내기도 했으나 문왕은 괜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또 그의 치세에 당나라에 안사의 대란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이 역시 개입하지 않았다. 756년 평로유후 서귀도가 >"금년 10월에 [[안록산]]을 쳐야 하니 기병 40,000명을 동원해 도와주셔야 한다." 고 했으나 의심해 보류한 것. 762년 당나라 측에서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책봉했다. 이전까지는 '발해군왕'이라 해서 제대로 된 왕으로도 안 쳐주던 상태였다. 군왕(郡王)이 국왕(國王)보다 격이 낮다. 그런데 발해가 시간이 지나며 확실하게 [[국가]]로 자리를 잡아버렸으니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때부터 시작해서 무왕까지 이어온 앙숙 관계가 드디어 끝나고 발해와 당나라는 서로가 멸망할때까지 평화적으로 교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