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왕(발해) (문단 편집) == 소개 == [youtube(VSLeu3MmGoM)] [[발해]]의 제3대 군주이자 [[가독부]]. 아버지인 제2대 [[무왕(발해)|무왕]]이 외치에 힘을 기울였다면 문왕 대흠무는 무왕 대무예가 만들어 놓은 세력을 기반으로 내정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소수림왕]]의 발해 버전이라 볼 수 있을 정도지만 발해의 기록 자체가 부실해서 재위 기간이 길고 장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왕의 행적 역시 가려져 있는 부분이 많다. 재위 기간이 무려 56년으로 발해의 왕 중에서 가장 길고 문왕 이후 [[한국사]]의 어느 군주도 그의 집권 기록을 깨지 못했다. 발해 문왕 이전 시대에서 찾으면 [[가야]]의 [[수로왕]], [[고구려]]의 [[태조대왕]]과 [[장수왕]], [[신라]]의 [[혁거세 거서간]] 재위 기간이 56년을 넘는다. 다만 [[수로왕]]과 [[태조왕]] 및 [[박혁거세]]의 경우 신화가 섞인 [[고대]] 기록이다 보니 불분명한 측면이 있어 장수왕 정도가 확실히 문왕보다 오래 집권했다고 볼 수 있는 군주일 듯. 이후 시대에 그나마 문왕의 재위 기록에 가까이 다가갔던 군주가 [[고려]] [[고종(고려)|고종]](45년), [[조선]] [[영조]](51년)와 [[숙종(조선)|숙종]](46년), [[고종(대한제국)|고종]](44년)[* 다만 고종은 [[태황제]]로서의 기간인 3년과 [[경술국치]] 이후 [[이태왕]]으로서의 기간까지 모두 더하면 55년(+15일)이 되어 문왕의 기록에 근접하기는 한다. 물론 나라가 사실상 망했을 때인데다가 이태왕 시기에는 통치 기간을 따져봐야 소용이 없기는 하지만 [[망국]]과 갑작스러운 [[서거]]만 아니었다면 문왕의 기록을 뛰어넘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도다. 그러다보니 대흠무의 재위 기간은 228년 발해 사직의 25% 수준이나 된다. 즉위하던 해에 벌써 딸인 정혜공주를 득녀했고 정혜공주도 차녀인 것을 감안하면 문왕이 즉위한 나이는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청년기에 즉위해서 80세 무렵까지 살다 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효공주 묘비에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이라는 내용이 새겨진 걸로 보아 유교와 불교를 장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