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순득 (문단 편집) == 기타 == * [[목포대학교]] 교수 최성환에 따르면 문순득이 표착한 곳은 현 [[일본]] [[가고시마현]]의 오시마섬, [[오키나와현]]의 오키나와섬, [[필리핀]]의 [[비간(필리핀)|비간]], [[마카오]] 산마로 일대이다. * [[표해시말]]은 우이도에 있는 문순득의 6대손인 문채옥(1920~2011)의 집에서 최덕원 교수에 의해 발굴 소개된 것이다. 문순득의 <표해록>은 내용상 '출범-표류-귀환-후기'의 4단계 구조로 되어 있고, 전반부는 일기체, 후반부는 풍토기로 구성되어 있다. 기록은 [[류큐 왕국]]과 [[루손 섬]]에서 견문한 사실을 풍속, 궁실, 의복, 해선, 토산, 언어 등 여섯 항목으로 나누어 싣고 있다. 특히 후반 내용은 유구와 루손의 남방문화를 자세히 소개한다. 유구의 경우,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으로 빨아 먹는데 젓가락을 입에 넣는 것은 더러운 것으로 이를 싫어한다거나, 루손에서 가슴이 답답하면 빗물을 마시어 설사를 하게 한다는 사실 등의 특징적 정보를 제공한다. * 아쉽게도 [[정약전]]이 집필한 『[[표해시말]]』의 원본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우이도에 전해온 『유암총서(柳菴叢書)』라는 책에 그 원문이 필사되어 있어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암총서』는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강회(李綱會)가 1818년~1819년 사이 우이도에 머물면서 집필한 문집이다. 1권 1책으로 48장 분량이며, 크기는 가로 15.5㎝, 세로 24cm이다. 문집에는 정약전이 저술한 『표해시말』이 서두에 실려 있고, 이강회의 저술로 선박제조에 관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는 「운곡선설(雲谷船說)」과 이용후생의 정신에 입각하여 수레를 만들어 보급할 것을 주장한 「차설답객난(車說答客難)」, 「제차설(諸車說)」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유암총서』는 우이도 남평 문씨 문중에 전해오다가 신안군에 원본이 기증되었다. * 이강회는 "문순득과 함께 표류하였던 사람을 모두 만나보았으나, 이국에 대해서는 한 가지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유독 문순득만이 두루 살펴본 바를 자세하게 구술하여 글로 남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문순득은 상인이면서도 일정수준의 교양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문순득의 표류경험과 그 영향', 최성환] * 문순득이 익혔던 언어는 상술했듯이 [[류큐어]]와 [[일로카노어]]였다. 거기에 당시 그가 표류했던 [[루손 섬]]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스페인령 필리핀]]의 일부였던지라, [[스페인어]]도 어느정도 익혔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를 제외하면, [[유럽]] 제어를 익힌 최초의 [[한국인]]이다. * 우이도에는 지금도 문순득 생가가 있으며[* 물론 워낙 낡고 오래되었다보니 현대식 구조물로 벽과 지붕을 무너지지 않게 감싸 두었다.] 진리 선착장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파일:IE001867513_STD.jpg]] * 2019학년도 9월 모의평가 [[동아시아사]]에 사료로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