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소황후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위서에 따르면 [[견일]]은 상산의 장씨에게 장가들어, 3남 5녀를 얻었다. 장남인 견예는 빨리 죽었고, 차남인 [[견엄]]은 효렴에 천거되어 대중군연과 곡양의 장(長)이 되었고, 삼남인 견요도 효렴에 천거되었다. 장녀는 견강, 차녀는 [[견탈]], 삼녀는 [[견도]], 사녀는 견영, 오녀는 문소황후 견씨이다. 그런데 남매 중에서 문소황후만 정확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설에 의하면 복(宓), 다른 설에는 낙(洛)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나 재미있는 건 낙(洛)은 낙수 낙(락), 복(宓)은 낙수의 여신 '복비'의 복이다. 낙수의 여신을 찬양하는 내용인 조식의 낙신부가, 사실 문소황후를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놓고 보면 절묘한 부분이다.] 그녀는 한나라 태보(太保) 견감(甄邯)의 후예로 집안은 대대로 2천석을 지낸 중산국의 손꼽히는 명문이었고 아버지 견일은 상채의 현령이었다. 불행히도 아버지 견일은 문소황후가 3살 때 죽었지만 문소황후의 집안은 부유했기 때문에 그녀는 딱히 경제적인 어려움은 겪지 않은 것 같다. 위서에 따르면 문소황후의 어머니는 항상 잠을 들 때마다 어떤 사람이 옥의(玉衣)를 들고 있다가 자신을 덮어주는 것을 보고 모두들 괴이하게 여겼다. 아버지 견일이 문소황후가 3살 때 죽어서 사람들이 장례식에 찾아왔는데, 이들도 기이하게 여겼다. 나중에 관상보는 사람인 유량(劉良)이 찾아와 문소황후와 그 자매들을 보았는데, 문소황후를 가리키면서 "이 아이는 말도 못할 만큼 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위서에 따르면 문소황후는 어려서부터 다 자랄 때까지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소황후가 8세일 때, 말타는 기술을 자랑하는 자가 문 밖에 있어서, 가족들 모두들 옥상에 올라가 그것을 구경했는데, 오로지 문소황후만은 구경하지 않았다.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더니, 문소황후가 "그것은 여인들이 볼만한 것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또한 문소황후가 9세일 때, 독서를 좋아하여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다 알았다. 그리고 여러번 오빠들의 필기구를 빌렸다. 오빠들이 문소황후에게 "넌 여자들이 하는 놀이를 해야 하는 것인데 왜 독서를 하는 것이냐? 여박사라도 되어보겠다는 것이냐"라고 핀잔을 주자 문소황후는 옛날의 현명한 여자들은 과거의 일을 배워 자신을 훈계했다며 옛 일을 알기 위해 문자를 알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후 천하에 전란이 일어나고 기근까지 겹치자 곤궁해진 백성들은 모두 금, 은, 구슬, 옥 등의 보물을 팔았다. 그 당시 부유했던 문소황후의 집에는 저장된 곡식이 많아서 보물을 많이 사들였다. 당시 10살 남짓했던 문소황후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고 차라리 친지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곡물을 나누어 주어 은혜를 베풀라고 말했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옳은 말이라고 여기고 곧바로 그녀의 말에 따랐다. 위략에 의하면 문소황후가 14살 때, 오빠 견엄이 죽었다. 문소황후가 어머니에게 과부가 된 올케를 친자매와 다름없게 처우할 것을 부탁하자 문소황후의 어머니는 이를 받아들였다. 여러 일화를 종합적으로 보면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주장하는 곧은 성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