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무일 (문단 편집) === 검사 === 1989년 [[사법연수원]]을 제18기로 수료하고, 군법무관으로 재직한 뒤, 1992년 검사에 임용됐다.[* 1988년 사법 파동 당시 모든 일에 '형'으로서 앞장서며 군사정권의 판검사로 임용받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던 그가 3년간의 군법무관을 마친 후 검찰을 지망해 검사가 되자, 이재명 등은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당시 이재명 등은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변호사의 길로 떠났기 때문. 그러나 사회변화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판사도 아닌 검사를 지망하는 것도 당시로선 일종의 용기였고, 검찰에서 할 일이 있다는 문무일의 각오와 결의를 이재명은 믿었다고 한다.] 대구지검에서 처음 검찰생활을 시작했으며, 전주지검 남원지청 검사 시절이던 1994년에 [[지존파]] 일당이 본인들이 죽인 남성을 자동차 추락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위장시켜 경찰이 초동수사 단계에서 이를 모르고 지나쳤을 때 그 변사체에서 살해흔적을 찾아 적극적으로 재수사를 지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평검사였던 문무일은 지리산에서 일어난 승용차 추락 사고가 살인사건이라는 의심을 품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변사체의 부검에도 관여했다. 검찰은 이를 단서로 [[지존파]] 사건을 밝혀냈다. 당시 문 검사의 수사가 꼼꼼하고 철저해 “수사 교본에 실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4/2017070401814.html|#]] 그 덕에 남원지청에서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탁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전두환]], 노태우 등 [[12.12]] 쿠데타 주역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본부 수사진에 파견됐다. 당시 문무일의 파견에 언론은 광주 출신으로 [[5.18]]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의 전력에 관심을 나타냈다. 5.18 당시 문무일의 친구와 인척이 계엄군에 맞서 투쟁하다 숨지거나 다쳤기 때문.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무일 검사와 절친한 광주일고 동기생 1명이 시민군에 가담해 계엄군 총에 맞아 숨졌고, 다른 1명은 전남 도청 사수 항쟁에 참여했다. 문무일 검사의 손윗동서는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707#csidx4294ec595eea68a99feb093b60f6ccb|#]] 그때 문무일 검사가 참여한 특별수사본부는 결국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시켰다. 그 후 서울지검 부부장검사, 제주지검 부장검사,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과학수사2담당관, 수원지검 2차장, 인천지검 1차장 등을 지냈다. 다양한 특수수사를 맡아 하면서, 검찰 내 특수통으로 분류되었다. 2002년 8월부터 2003년 3월까지는 대검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에서 활약했다. 2004년 제주지검 부장검사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별검사팀에 파견됐다. 그때 최도술의 불법자금 모금 및 수수의혹 등을 수사했다. 2007년에는 대검 중수1과장이라는 요직에 올랐다. 그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 비호 의혹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함께 수사에 나섰던 이들이 [[윤석열]](연수원 23기) 검사와 [[윤대진]](연수원 25기) 검사다. 2007년 11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특별수사·감찰본부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빠지면서 논란이 됐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의 폭로자였던 [[김용철(1958)|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은 광주일고-고대법대 3년 후배인 문무일이 수사팀에 합류하는 것을 희망했지만 무산됐던 것. 대신 삼성 친화적인 언행을 보인 검사들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천주교인권위 등에서 "적절하지 않은 인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승진하였다. 당시 ‘요직에 호남 출신을 앉히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검찰 내부에서 문 후보자를 적임자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4/2017070401814.html|#]] 그때 [[효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 사위 수사 등을 맡아 효성 실무진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3년에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으로 영전하였다. 그 후 서울서부지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 시절에 [[조승연(기업인)|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을 총지휘하며 조 전 부사장을 구속했다. 2015년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성완종]] [[성완종 리스트|리스트]]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수사팀을 이끌었다. 당시 대검찰청은 문 후보자에 대해 '검사장급 중에서도 특수 수사 경험이 많아 이 사건 수사에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호남인사 전면 배제 원칙에 따라서 계속 바깥으로만 돌던 문무일에게 검찰 지휘부가 성완종 사건 수사를 맡긴 건 사실상 '너 죽어라'는 의미였을 거라는 견해가 있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 결과를 내면, 차기 인사에서 날려버렸을 거고, 만약에 적당히 수사해주기만 한다면 여론의 질타를 그쪽으로 뒤집어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호남 출신의 문무일을 앉힌 거라고...] 수사 결과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기소했다.[* 당시 홍준표는 문무일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취재진을 만나 "후배 검사에게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015년 12월에는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는 검찰개혁추진단 내 ‘바르고 효율적인 검찰제도 정립 TF’ 팀장을 맡아 검찰 개혁 작업을 맡았다. 문무일은 당시 검찰 제도 개혁 관련 연구 책임을 맡았다. 2017년 7월 5일에는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으로 내정되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임명된 [[김태정(법조인)|김태정]](광주), [[김대중 정부]] 당시의 [[신승남]](전남 목포), 노무현 정부 당시의 [[김종빈]](전남 여수) 전 검찰총장에 이어 역대 네 번째 호남출신 검찰총장. 무려 12년 만의 호남출신 검찰총장이다.[* 뿐만 아니라 법무·검찰 수뇌부 모두가 호남 출신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마침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도 전남 무안출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