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동환 (문단 편집) === [[한화 이글스]] 시절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424221919462.jpg]] || || (출처 : 포토로) || ||[[파일:/image/109/2006/10/23/200610231958151101_1.jpg]] || || [[2006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역투하는 모습 || || [[파일:/image/109/2007/08/23/200708232006031101_1.jpg]] || || [[한화 이글스]] 시절 || [[유승안]] 감독 하에서 2004년 다시 선발로 돌아왔으나 성적은 처참했다. '''120⅔이닝 4승 15패 ERA 5.37'''. 더 이상 선발로는 뛸 수 없을 것이라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2005년에는 173⅔이닝 동안 10승 9패 103K ERA 3.47, 2006년에는 189이닝 동안 16승 9패 85K ERA 3.05로 완벽히 부활하여 돌아왔다. 2006년에는 특히 동산고등학교 출신의 신인 [[류현진]]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했으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한다. 이때 문에이스로 불리우며 한화 이글스 마운드의 든든한 선발로서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해왔다.[* 만약 팀이 한화만 아니었다면 맏형이 되었을 수도... [[최영필]]이 '''한화의 영건''' 소리를 듣던 바로 그 시절이다.] 2005년도 PS에서는 준PO 1차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선전하였다. 하지만 이 당시 [[김인식]] 감독의 말도 안되는 혹사[* 2006년도에는 31경기(29선발), 2007년에는 11번 선발 출장에 10번 구원 출장을 기록했다. 이 당시 몸이 성치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완전히 선수를 보내 버리는 기용이었다. 사족으로 경기당 평균 투구수조차도 동년배였던 정민철과 비교하면 더 많이 던졌다. 거의 100개를 넘기는 투구수가 그의 선발 등판시 강판의 기준이였고, 완봉, 완투도 나이에 비해 많았다.]로 인해 2007 시즌 이후 다시 부상이 재발해 버렸다.[* 정확히는 시즌 중반부터 허리에 이상이 생겼고 병원 검진 결과 허리 디스크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던지게 한 김인식 감독님의 용단에 [[반어법|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2007년 포스트시즌에서는 허리부상을 안고도 강행한 피칭이 장딴지-고관절-허리-종아리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이후 더 이상 1군 마운드에 올라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가뜩이나 부상이 완치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2군 경기를 치루려고 했기에, 그 부상은 더욱 악화되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까지 치닫고 말았다. 결국 2009년 7월 8일 [[최상덕]]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이후에도 개인 훈련을 하면서 팀을 모색해봤지만 불발되었다. 한화 시절 세운 특이한 기록이 좀 있다. 2006년 7월 6일 선발투수로 나선 경기에서는 5회말 종료 후 0:0 스코어에서 폭우로 강우 콜드 처리되어 상대 선발투수였던 김회권과 함께 동반 무실점 완봉 ND를 기록한 적이 있고, 같은 해 8월 20일에는 고작 88구만 던져 10피안타 5실점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다. 두 경기 모두 상대는 [[LG 트윈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