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동환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야구부|연세대학교]]로 진학했다. 아마추어 시절 제 2의 선동열이라는 수식어로 묘사되며 최고의 우완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바로 1년후 92년 졸업생으로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임선동]],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신일고]] [[조성민]],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 [[박찬호]]가 쏟아지면서 약간 묻힌 감이 있다. 이때는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정민철]]도 앞의 3인방에 밀려서 언급도 안되던 시절이었고 [[박재홍(야구)|박재홍]]은 투수로서도 괜찮았지만 타자 쪽 재능을 더 높이 평가받았다. 그야말로 꿈의 92학번. 게다가 그의 소속 팀이었던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고]]는 지역 예선 통과도 못하는 만년 약체로 메이저 대회라고는 전국 모든 팀이 지역예선 없이 모두 출전하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만 간신히 출전했을 정도였다.][* 또한 고교 시절에는 같은 학번으로 대학 동료이기도 한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의 [[안희봉]], [[인하대학교 야구부|인하대]]로 진학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의 [[위재영]]이 있기 때문에 독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후 안희봉은 고교 시절 겪었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수로서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연세대 시절 1992년과 1993년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우수투수상을,[[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51200239123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5-12&officeId=00023&pageNo=23&printNo=22342&publishType=00010|19930512 관련기사.]] 1994년에는 대학야구 춘계리그 MVP + 아마야구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12010023912501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4-12-01&officeId=00023&pageNo=25&printNo=22874&publishType=00010|19941201 관련기사.]] 150Km는 우습게 찍는 구위에 제구력까지 갖춘 완성형 투수로, 국가대표 1선발을 도맡아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아마추어 최강 쿠바 선수들이 한국투수들 중 유일하게 기억하는 선수가 문동환이었을 정도. 졸업 후에는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실업야구]]팀이었던 [[현대 피닉스]]에 계약금 '''3억원'''이라는 당시 최고 대우로 입단하였다.[* 프로 팀으로 한정할 경우 같은 해 LG에 입단한 [[심재학]]과 삼성에 입단한 [[김재걸]]이 각각 2억 1000만원씩 받은 게 신인 계약금 최고 기록이었다.][* 지금도 신인 계약금 3억 이상이면 보통보다 살짝 많은 편이지만, 이 때는 무려 '''1995년'''이다. 당시 물가를 감안해보면 지금의 약 6억~7억 원에 해당되는 큰 돈이다.] 당시 현대 피닉스의 아마추어 선수 싹쓸이의 화룡점정.[* 여담이지만 이 해 롯데는 2차 2라운드에서 지명한 고려대 [[조경환(야구)|조경환]]까지 현대 피닉스로 가버리면서 본의아니게 자신들이 지명해놓은 선수 두 명을 현대 피닉스에 빼앗긴 셈이 됐다.] 심지어 여기다 [[현대건설|자사]] 아파트 분양권까지 줬다. 그럼에도 연고팀 롯데는 문동환의 현대 피닉스행이 사실상 확정된 시점이었음에도 1차 지명권을 문동환에게 행사했다. 한마디로 언제 입단할 지도 모르는 선수에게 1차 지명권을 쓴 셈인데,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문동환의 아마추어 시절 활약이 엄청났다는 것. 그러나 1995년 현대그룹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로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현대 피닉스는 애매하게 붕 뜨게 되었다. 문동환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지만 대표팀이 최하위를 거두어 병역특례를 받는 데 실패하고, 그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지만 몸 이상으로 귀향 조치된데 이어 최종적으로 [[병역면제]]를 받게 된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는 비슷한 상황을 겪은 [[주형광]]과 마찬가지로 문동환의 향후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 유니콘스는 프로 첫 시즌을 마치고 2년차가 되던 시점 전력보강을 위해 [[롯데 자이언츠]]의 [[전준호(1969)|전준호]]를 영입하고자 문동환을 카드로 내세웠다. 현대 피닉스는 문동환과 입단 계약시 '계약을 해지할 경우 수령한 계약금과 연봉을 상회하는 액수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를 조건으로 족쇄를 채워놨기 때문에[* 사실 이런 노예계약은 피닉스 쪽 선수들 상당수가 걸려있는 문제였다. [[김재걸]]도 그래서 계약금이 2억 1천이었지만 실질적으로 피닉스에 지급한 위약금 때문에 받은 돈은 절반조차 되지 않는다.] 문동환으로선 롯데로 가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롯데가 전준호를 현대와 현금 5억에 트레이드를 하고 → 이 5억을 문동환에게 계약금으로 지급해서 → 문동환이 그 계약금으로 현대 피닉스에 위약금을 지불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매우 편법스러운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롯데 입장에선 매년 연봉협상 때마다 전준호가 골치거리였던데다 마침 1996 시즌에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터라[* 전준호의 장기인 도루가 95년 69개에서 96년 23개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신인으로서 데뷔시즌을 잘 치른 [[김대익]]의 성장을 믿고 전준호를 기꺼이 포기했다. 게다가 좀 막장스러운게 전준호를 현대로 현금 트레이드 시킨 게 시즌 개막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실제로 전준호는 충격 탓인지 현대 유니콘스에서의 첫 시즌을 .247의 타율과 23개의 도루로 부진하며 롯데가 옳은 판단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뻔 했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리그 최강의 톱타자로 거듭나며 그 뒤의 결과는 다들 알듯이 전준호의 완승. 어찌됐건 이 현금 트레이드(....)로 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