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과 (문단 편집) === 산업계에 문과적 지식은 필요하다 === 취업 경쟁에 내몰린 구직자들(그리고 이 경쟁 속에서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면접관들도)은 자연스럽게 문과 지식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문과 지식의 권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업시장의 생태가 그 사회의 전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보급된 현대사회에서는 체계적이고 조직화, 계량화된 '이과 지식'이 대세가 되었고, 모호한 권위에 의존하는 '문과 지식'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식의 관점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냥 "문과에는 [[연구방법론]]이 없다" 는 과격한 주장밖에는 되지 않는다. 문과 각 학문들에는 그 학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유의 방법론과 그에 뒤따르는 처절하고 살벌한 논쟁들이 있어 왔다.[* 여기서 "이러한 논쟁은 [[점성술]], [[연금술]], [[오컬트|신비학]] 등과 같이 현대에는 유사학문으로 치부되는 것들에도 있었는데 이들과 비교했을 때 실증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느냐" 는 산업계의 질문에 대해서는 각 학문들이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호한 권위가 통한다면 그건 어떤 특정 학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술공동체 자체의 문제, 더 크게는 그 공동체를 품고 있는 사회의 권위주의적 풍조나 그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치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문과 특유의 '학파' 개념이 모호한 권위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특징은 '''문이과 모두 방법론에서는 견실함에도 불구하고''' 인식론 수준에서 이견이 없는 이과와는 달리 '''문과에서는 인식론 수준에서조차 이견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식론에서의 이견은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물리치기 어려우므로 결국 '학파', '그룹', '스쿨' 같은 집단화로 무마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론에서의 이견의 존재가 방법론으로서의 완성도나 누적된 지식의 신뢰성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이과가 아닌' 학문적 특성일 뿐이다.][* 참고로 이과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식론이 중요한 분야가 바로 이론물리학인데, 여기도 학파 개념이 있다(코펜하겐, 괴팅겐 등). 여기서 적어도 자연과학은 현상을 관찰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이건 '''[[사회과학]]'''도 똑같다. 그리고 실험과 관찰을 한다는 이론물리학조차 '학파' 개념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인식론의 차이 때문임을 생각하면, [[인문학]]이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관찰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대답은 문과에서 인식론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무자[* 전문가 개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학계와 사회에서 전문가라는 개념은 매우 조심스럽고도 엄밀하게 정의되어 있으며, 문과에도 전문가가 당연히 존재한다.]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항목(item), 사업(program), 과제(task), 또는 잘해 봐야 프로젝트(project) 정도까지만 다루기 때문에 이런 '''액션플랜'''(action plan)들을 직접 실현할 수 있는 실무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되며 이들이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개인의 여가생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오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과 지식의 유용함은 소위 '''메가 트렌드'''(mega-trend)를 읽어내고 이끄는 데서 나온다. 자신이 몸담은 기업이나 조직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문과에 대해 우습게 말하지 않는다.[* 한순간의 의사결정으로 수백~수천개의 밥그릇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처지에 선 사람은 매사에 뭔가를 그렇게 가볍게 단언하지도 못한다.] 조직이론에서 말하는 전망(vision), 사명(mission), 목표(goal), 목적(objective), 전략(strategy) 수준의 방향타를 잡고서 머리를 쥐어뜯는 일을 하겠다면 그때부터는 '''인간과 사회 본연의 속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간에 각 조직들의 [[높으신 분들|국장 및 실장 이상쯤 되는 간부들]]이 [[인문학]] 연수를 받으러 몰려다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전부 다 현장의 실무에 무지한 [[무능력한 상사]]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무능하다는 건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현장의 실무를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메가 트렌드에 민감해지고자 애쓰는 간부들도 있다. 또 기업과 관공서에서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할 때 참고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각종 사례와 지표로 정리된 시장조사 보고서이지 인문학 지식이 아니라는 말도 있으나, [[논문]]이든 [[보고서]]든 간에 모든 숫자의 보고(reporting)는 반드시 가치에 입각한 해석(interpreting)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건 통계분석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보고서에다 뭔가 이런저런 팬시한 그래프 잔뜩 그려놓고는 그 밑으로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지향해 주지 않으면 팀장급 선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그게 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여가생활밖에는 되지 않았더라면, 기업체들이 아예 이런 것만 전문으로 강연하는 인문학 박사 출신들을 초빙해다가 사내 특강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래 소비자들이 어디로 몰려가는지 알아야 그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법이고, 미래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야 우리 조직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법이다. 비록 현재의 인문학이 그런 원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인문학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문과 역량이 없으면 정무적인 역할 외에는 아무것도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그냥 관료 1, 심하게는 그 정무적인 역할도 못 해내게 된다.[*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목적의식이 필요한데, 목적의식이란 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행능력을 갖춰 뒷받침하면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란 곧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에 관련된 문제이고 바로 이에 대한 지식이 문과적 지식이다. 상기된 바 [[경영학]] 입문 수준에서도 목적(objective) 이상의 상위개념은 반드시 가치의 개입을 전제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사회는 매년 [[12월]]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신간을 구매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매해 12월마다 전국의 대형서점을 점령하는 것이 바로 이 [[트렌드 코리아]]다. 오죽하면 출판업계에서는 자기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간은 무조건 12월을 피해서 공개한다는 관행이 있을 정도다.] 각계의 [[높으신 분들]]은 시간당 100만 원씩이라도 지불해 가면서 그 휘하 연구원들을 모시고 새해에 어떤 키워드가 뜰지에 대한 특강을 듣는다. 어떤 이들은 경영의 현장에서 문과적 지식의 중요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과거의 경영은 경영자의 마케팅적 감각과 비전에 의존했으므로 이를 기를 문과적 소양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업이 개인의 통찰력보다는 수치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근래에는 경영학이 아니라 산업공학을 전공한 데이터분석, MIS 전문가들이 경영학과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음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의사결정에는 문과적 측면이 개입하게 되며, 전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선택이나 결정은 거의 찾기 힘들다. 숫자는 가치에 의해 의미부여되기 전까지는 한바탕의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실제로 [[데이터과학|데이터분석]]이라는 활동 자체가 데이터로부터 '''가치 있는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이며, 그 정체성은 전통적인 비즈니스와 IT, 그리고 통계학의 혼합에 가깝다.[* 실제로 [[국가공인 데이터분석 전문가]] 자격증 시험에서도 바로 이 관점을 따라서 데이터분석을 정의한다.] 문과적 역량이 부족하다면 의사결정 중에 자신이 문과적 역량을 쓰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이제는 문과적 감각이나 비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라는 선언은 문과적 역량을 단순히 '감' 내지는 '촉' 정도로 여기는 몰이해를 드러낸다.[* 지적으로 더 엄밀히 말하자면, 감이나 촉은 문과적 역량이 아니라 [[SECI 모델|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 더 대중적인 표현으로는 경험으로부터의 [[노하우]]에서 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당장 어떻게 해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가" 에는 이과가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어디로 가야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가" 에는 문과가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문과 지식은 근로자보다는 경영자에게 그 활용가치가 더욱 크다. 아무리 정보화 사회, 스마트 사회가 된다 해도 '이과 지식을 활용하는 경영인' 보다는 '이과 지식을 활용하는 근로자' 들이 더 많이 늘어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신이 [[낙하산|뜬금없이 어느 집단의 고위직으로 취직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이과 지식을 쌓는 데 애를 쓰게 되고, 그들을 데리고 험한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높으신 분들]]은 또 자기들대로 문과 안목을 키우기 위해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잡스나 저커버그, 머스크 같은 현실의 기업가들에게 적용하자면 그들이 처음에 이과와 관련된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실무를 직접 처리하며 '이윤' 을 창출해야 했기에 이과 지식이 필요했다면, 그들이 큰 기업으로 성장하여 세계 시장을 선도하게 된 이후로는 이과 실무는 아랫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고, 그때조차도 기존의 인간 사회에는 없는 새로운 '가치' 를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해야 하기에 문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창업하는 순간부터도 문과 지식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까 '문과로 가면 잡스는 못 된다, 이과로 가야 잡스가 된다' 따위의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지식이 있는 것이고 어느 쪽도 성공과 아예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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