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츠(전함) (문단 편집) == [[폭발]]사고로 맞은 허망한 최후 == || [[파일:1lJMpMZ.jpg|width=100%]] || || [[파일:BGBxccB.jpg|width=100%]] || |||| [[파일:L5j1aQl.jpg|width=100%]] || |||| 침몰 후 수십 년 뒤에 건져낸 1, 2, 4번 주포탑 || || [[파일:uWbSz2i.jpg|width=100%]] || || 구 [[일본제국 해군]]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에 해당)이자 현 [[방위대학교]]박물관 소속으로 내부 항구에 전시된 대개장 당시 빼내어진 4번포탑[*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전함 주포로는 현재 무츠의 것만이 남아있다. 나머지는 모두 미군에게 넘어가거나 스크랩된 상태. 나가토급 전함을 개장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주포탑을 탈거하고 건조가 중단되어 잉여로 남아있던 [[카가급 전함]]의 주포탑으로 교환했는데, 전시되어 있는 포탑은 개장 전에 달려있던 포탑이다. 참고로 카가급의 주포탑은 명칭과 구경, 포신은 동일하지만 기존 나가토급의 주포탑보다 앙각과 사정거리가 개선된 물건이었다.]. 인근엔 [[야마구모급]]의 것으로 보이는 연장포탑 하나가 추가로 세워져 있다. || 하지만 무츠는 위에 언급된 4척이 현역에 취역하기 전이나 그 뒤에나 제대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전했지만 '''너무 느려 터져서 함대에서 낙오되었다.''' 결국 구축함 3척의 호위 하에 트럭 제도로 돌아가야 했고, 이것이 무츠의 유일한 실전 투입이었다. 이후 무츠는 1943년 6월 8일, 히로시마 하시라지마(柱島)에 정박했다가 오후 12시 10분쯤에 갑자기 폭발과 같이 침몰해버렸고, 승조원 1,474명 가운데 353명만 생존했다. 그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제기되었는데 연합군 잠수함에 의한 기습, 스파이에 의한 파괴공작, 탄약고 내의 자연발화, 폭뢰폭발설 등이 있다. * 우선 [[잠수함]]에 의한 [[어뢰]] 공격의 경우 침몰하기 전 3번 주포탑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다수의 증언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아닌 것으로 판정되었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이 한창 때에 연합군 잠수함이 전함을 격침시키는 대전과를 세웠다면 발표되지 않을 리 없다. 일례로 [[시나노]]를 격침한 잠수함 아처피시의 경우 상부에서 시나노의 정보가 없어서 순양함으로 처리하려다가 승조원의 반발로 재조사 후에 최대 항공모함의 격침을 인정받았다. * 폭뢰설은 일본의 우익들이 지지하고 있는데 히로시마항에서 [[구축함]] 우시오가 '''실수로''' 1년 반 전에 무츠가 있던 자리에 [[폭뢰]]를 떨어뜨리고 책임을 묻게 될까봐 이를 보고하지 않아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폭발했다는 것. 그러나 마찬가지로 3번 포탑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잠수함]]조차 직격을 맞아도 한 두발은 경우에 따라서 버틸 만큼 위력이 약해 격침보다는 침몰 직전으로 몰아 부상시키는 게 주 목적일 정도인 폭뢰가 터진다고 하더라도 손상을 입는다면 모를까 격침까지 가는 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이건 폭뢰 자체의 위력이 약해서라기 보다는 폭뢰가 잠수함에 명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영국제 Mark.VII 폭뢰는 130kg의 토펙스가 들어가 있고[* 미국제 마크 18어뢰의 탄두에 토펙스가 600파운드(약 272kg)이 들어가므로 그 절반정도로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미국제 폭뢰도 100~300kg의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NT]]가 들어가므로 강한놈은 [[산소어뢰]]의 절반 정도의 TNT가 들어가있으니 폭뢰라고 무조건 약한 건 아니다. 물론 저런 어뢰도 전함을 일격에 날리지는 못하는만큼 그보다 위력이 약한 폭뢰에 의해서 전함이 격침되는 건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된다. 오히려 이런식으로 격침 되었다면 설계상이나 기공상에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뜻이니 그것 나름대로 문제이다. 때문에 --멍청한--일부 우익들을 제외하면 거의 묻힌 주장이다. * [[스파이]]의 공작활동으로 전함을 파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거진 현실에서 어지간한 액션물 주인공들을 능가하는 활약을 한 것인데, 이런 대단한 스파이가 실제 있었다면 연합군이 승전한 시점에서 지금까지 이런 엄청난 공적을 발표하지 않을 리 없다. 정말로 무츠가 스파이 공작으로 파괴되었다면 그야말로 스파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전설적인 업적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룬 소설인 『무츠폭침(陸奥爆沈)』에서 가능성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을 뿐 주요한 소재가 아닌 상황이다. * 일반적으로 탄약고내의 포탄이 자연발화한 경우는 [[https://en.wikipedia.org/wiki/HMS_Vanguard_%281909%29|HMS 뱅가드(1909)]]가 있는데,[* [[뱅가드급 전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인트 빈센트급 전함]]이다.] 1917년 7월 9일 [[스캐퍼플로]]에서 훈련중 코다이트 MD 장약에 불이 붙어 폭침을 당한 적 있다.[* 이 사고로 인해 승조원 845명중 폭침에서 생존한 승조원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원래 구조된 승조원은 3명이였지만, 1명은 구조직후 사망하여, 최종 생존자는 2명이다. 여담으로 [[영일동맹]]으로 인해 참관인 자격으로 뱅가드에 승선해 있던 [[일본 해군]] 장교 에토 쿄스케 대위도 폭침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후 1984년에 에토 쿄스케 대위의 유족들이 뱅가드가 침몰한 해역에 방문하여 뱅가드의 선체 일부를 인양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이 쓰던 [[3식탄]]은 [[마그네슘]]과 가연성 소이탄이 내부에 들어있어 3식탄의 자연발화 가능성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함께 히로시마에 정박해있던 전함 후소의 함장 이하 목격자들이 진술한 3번 주포탑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니트로글리세린]]과 면화약이 주성분인 주포용 93식 1호 장약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이 가능성도 부정되었다. 그리고 93식 장약은 독일 무연화약 기술을 받아들여서 센트랄라이트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섞어 들어간 장약은 왠만해서는 자기발화하지 않았고, 유틀란트 해전에서 불안정한 코다이트 Mk.1과 MD 장약으로 인한 유폭으로 고생한 영국 해군도 센트랄라이트를 섞어서 쓸 정도였다.(코다이트 SC) 결국 잠수함도 기뢰도 스파이도 자연발화도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 탄약고에 접근하기 쉬운 [[수병]]이나 [[당직사관]] 등이 실수로 불을 냈거나 고의적인 방화라는 가설만이 남는다. 이들이라면 여분의 열쇠 한 개쯤 몰래 훔치거나 복제해서 손에 넣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수라는 면에서는 탄약고에서 불을 붙이는 미친짓을 하는 상황이 있겠나고 반문할 수 있지만, 병사의 실수로 유폭해 침몰사고를 당한 군함이 있다. 이 군함이 바로 일본의 전함 [[미카사]]다. 사실 이 경우 여러 나라의 해군에서 유행하던 신호용 램프등에 들어있는 알코올에 일부러 불을 붙인 후 냄새를 없애 술처럼 마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당장 영국이나 이탈리아, 독일은 물론 금주법 크리였던 미국은 여기에 더해 어뢰추진용 알코올을 빼다 마시기도 했다.] 문제는 이 짓거리를 탄약고에서 해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유폭, 승무원 수백 명이 사망하고 미카사는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 사실 탄약고 자체가 평상시에는 관리자가 아닌 이상 들어갈 일이 적다보니 의외로 일반 병사들이 모여 으슥(?)한 짓을 하거나 병사들의 일탈현장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고의적인 측면에서 자기가 타고 있는 전함에 불을 지르냐 하는 의문이 드는데, 사문회에서 제시된 가설은 3번 포탑 근무자 가운데 절도 범죄에 기소당했던 수병이 불만을 품고 탄약고를 터뜨렸다는 것이다. 일단 당시의 사고 조사반에서도 뭔가 증거를 찾아냈으나 갑자기 모든 수사를 끝내고 원인불명 처리했다고 한다. 적군의 폭탄 설치나 여러가지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가장 먼저 연기가 치솟은 3번 포탑에서 폭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갑작스럽게 군부 측이 사건조사를 끝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팀킬|아군의 자침행위]]라는 게 알려지면 일본군의 위신이 추락할것을 꺼려서였을 듯 하다. 유족들은 그저 전투 중 격침 정도로 전해듣고 전사자 연금을 받았으며, 무츠가 폭침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패전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군대라는 조직은 일반 사회에 비해 매우 폐쇄적이며, 그중에서도 해군의 경우에는 몇 달이고 망망대해에 나가 훈련하다보니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거기다 일본 특유의 똥군기로 인해 함내에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수병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노를 어디 표출할 곳도 없었기에 이러한 일은 어쩌면 언젠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현대 한국군도 이러한 가혹행위 때문에 일선의 병사들이 자살하거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마당에, 구타와 가혹행위가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일본 자위대의 자살률은 한국군의 자살률을 상회한다.] 이를 증명하듯 당시 일본 해군 장병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노래 또한 정말 가관인데... > 귀신 [[후소급 전함|야마시로]], 지옥 공고, 소문난 뱀 [[나가토(전함)|나가토]]. [br] [[이세급 전함|휴우가]]에 갈까, [[이세급 전함|이세]]에 갈까, [[자살|해병단에서 목이나 맬까.]] [br] 지옥 [[하루나(순양전함)|하루나]]에 귀신 [[공고(순양전함)|공고]]. 나찰 [[기리시마(순양전함)|기리시마]] 야차 [[히에이(순양전함)|히에이]]. [br] 타지마라 야마시로 [[귀신]]보다 무섭더라. '''수병들조차 자기 나라 군함들의 똥군기가 무서워 타지 말라는 노래다.''' 거기다 이게 유행까지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특히 이러한 똥군기는 함의 크기가 클수록 심각했고 전함급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전함은 당시 해군의 최강 전력인 만큼 훈련은 매우 빡세지만 정작 실전 투입은 많지 않고, 인사 이동도 잦은 편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곧 있으면 안 볼 사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서 평상시에 쌓이고 쌓이는 스트레스를 후임이나 부하를 두들겨 패고 괴롭히면서 풀었다고 한다. 반대로 구축함 이하의 소형함에서는 함장의 성향에 따라 함내 분위기가 비교적 온화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대형함선 지휘에 문외한이라 구축함을 주로 몰던 [[기무라 마사토미]]는 온후한 성격이라서 부하들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거주 환경이 함정 중 가장 열악하고, 침몰 시 생존 가능성이 없는 잠수함의 경우 일본군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똥군기가 없고 승조원들의 분위기도 좋았다고 한다. 여기서 주포 [[탄약고]]에 불 좀 났다고 거함이 격침 당할 수 있는가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군함]] 간의 포격전 같은 '''[[유폭|전투 상황 시 가장 위험한 사태 중 하나가 탄약고에 불이 나는 것이다.]]''' 육상에 설치된 탄약고에서 불만 나도 초비상이 걸리며 탄약고가 폭발하면 장난이 아닌 피해를 입는다. 자세한 내용은 [[유폭]]문서 참고. 따라서 주포 탄약고에 불이 나서 탄약이 유폭한다면 함선의 크기가 아무리 크더라도, 방어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당장 야마토급의 경우 2번함 무사시는 덩치도 덩치지만 미 해군의 항공기들이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6차례의 공습을 거쳐서 침몰시켰을 만큼 방어력이 매우 뛰어난 전함이었다.] 굉침당하는 것은 순간이다. 어쨌든 무츠가 침몰한 원인은 3번 포탑 내 탄약고에서 난 불이 탄약고를 유폭시킨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는 사문회의 절도범 가설이 영어권 연구를 비롯해서 여러 자료에서 인용될 뿐 아직까지 여러 이견이 존재하며 심지어 우리나라 밀덕 커뮤니티에서는 수병 간의 가혹 행위가 불러온 자살적 테러설이 널리 퍼져있다. 함선에 배속되느니 '''[[자살|차라리 목이나 매달고 만다]]''' 따위의 노래가 유행하는 만큼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