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전한) (문단 편집) === 황제가 되기까지 === 원래 한무제는 부황 [[경제(전한)|한경제]]의 11번째 아들[* 《한서》 <제후왕전>에 10번째로 나오기 때문에 10남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11번째로 나오는 광천혜왕이 《한서》 <경십삼왕전> 중 <광천혜왕전>에서 무제의 형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광천혜왕과 무제의 순서만 바꿔보면 11남이 된다. 12번째로 나오는 교동강왕은 대놓고 한무제의 동생이라고 하기 때문에 11째 밑으로는 가지 않는다. 결국 이복형보다 왕에 봉해진 순서가 먼저라는 건데, 광천혜왕의 어머니가 한무제의 어머니의 동생으로 지위가 낮아서 그런 듯 하다.]로 교동왕(膠東王)이었다. 경제[* 경제가 고조 유방의 손자이니, 그 아들인 무제는 증손자다.]는 [[폐후 박씨|박 황후]]에게서는 자식이 없었고, 대신 6명의 후궁에게서 14명의 아들을 보았다. 또한 무제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장자인 유영이 황태자로 있었으니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한 한나라에서 그가 황제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박황후가 폐위된 뒤에 누구를 새 황후로 삼느냐가 문제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무제의 어머니인 [[효경황후|왕지]]는 경제의 유일한 친누나인 관도공주의 딸 [[효무황후 진씨|진아교]]와 자신의 아들 유철을 혼인시킨 후, 관도공주가 경제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 자신이 새 황후가 되고, 유철을 황태자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에는 당시 태자였던 유영의 생모 율희의 실수도 있었는데, 관도공주는 자신의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황태자 유영에게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율희가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아마도 경제에게 많은 후궁들을 보내던 관도공주에 대한 반감과 자신이 이미 황태자의 어머니이니 황후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외에 경제가 자신이 죽으면 율희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잘 부탁한다고 했을 때 도리어 황제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 결과 경제는 율희에 대해 마음이 떠났고, 이러한 기회를 이용한 왕지와 관도공주간의 공작의 결과, 율희가 아닌 왕지가 황후가 되었으며, 유영은 태자 자리에서 폐위되고 유철이 새로운 태자가 되었다. 이후 경제는 황태자 폐위를 반대한 [[주아부]]를 유사하게 했고, 유영의 스승이자 [[효문황후]]의 조카이며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한 위기후 두영을 실각시키며, 왕지의 동생인 무안후 전분을 승상에 앉혔다. 한편 황태제를 노린 동생 양효왕 유무는 비록 어머니의 편애 때문에 대놓고 제거할 수는 없었으나 입조를 막는 등 냉대했다. 그 후에야 유철, 즉 한무제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