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제(양) (문단 편집) == [[야사(역사)|야사]] == 생전에 인도에서 '[[선(동음이의어)#선(禪), 수양 방법|선]]([[禪]])'을 전파하러온 고승 [[달마]]도 그를 만난 적이 있으나, 자신을 중국의 [[아소카 대왕|아육왕]]이라 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얼마만큼의 공덕이 되겠느냐고 달마 대사에게 질문하였으나 달마는 한마디로 '''"무([[無]])"'''라고 하였다. 선업선과 악업악과의 유위적이고 외적인 공덕이 아니라, 실제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무위적이고 내적인 공덕에 비할 바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김용옥]] 등은 이를 실화가 아니라 [[맹자]]와 양혜왕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와서 만든 [[은유법]]라고 풀었다. 한 야사에 따르면 이에 열을 받은 무제는 자객을 보내 달마를 [[암살]](혹은 [[독살]])하고는 위선적으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탑에서 [[짚신]] 한 짝만 두고 살아나와 서쪽으로 내빼 영영 사라졌다고 전한다. 이때 추격하는 군사들을 큰 강에서 갈대 하나를 꺾어 [[수상스키]] 타듯 따돌렸다고 한다. 짚신 나머지 한 짝은 막대에 꿴 체였다. 물론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달마는 양무제 치세에 죽었으니 그의 때 맞춘 죽음에 보태어 만든 이야기로 보인다. 내용이 조금 다른 야사에 의하면 양무제는 달마를 죽이지는 않고 단순히 궁에서 보냈다. 이후 당대의 고승인 지공(志公)을 만나 달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사람을 보내 달마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지공이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백성을 보낸다고 해도 결코 돌아오지 않으실 분입니다.'라고 만류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달마의 기록들이 하나같이 [[전설]] 수준인 데다, 불교에 그토록 심취한 황제가 불교에서 죄악시하는 살생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선종(불교)|선종]]의 달마 띄워주기 과정에서 황제를 끌어들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양무제가 달마의 열반 이후 그의 깨우침을 기리며 친히 추모비를 세워줬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눈으로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고'''(見之不見, 견지불견) > '''맞이해서 만나고도 뜻을 맞지 못했으니'''(逢之不逢, 달지불달) > '''예고 지금이고'''(古之今之, 고지령지) > '''후회하고 한스럽구나'''(悔之恨之, 회지한지) 다른 야사에 따르면 살생을 금지했던 불교의 교리에 따라서 양무제는 기존의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새로운 형벌을 만들어 냈는데, [[누각]]을 하나 짓고 중죄인에게 [[새]]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아준 다음에 [[자살|누각 위에서 스스로 줄 없는 번지 점프를 하게 하는]] 형벌이었다. 누각에서 뛰어내렸을 때 살아남은 죄인은 용서를 해주기로 했으나 실제로 그런 일이 있지는 않았다. 단, 이 야사는 버전이 워낙 다양해서 양무제가 아닌 다른 황제의 일화로 소개되기도 한다. 또다른 야사는 애초에 소연 역시 제나라의 황족이었기 때문에 굳이 국호를 바꾸지 않아도 되었지만 동족혐오로 제나라 황족들의 막장짓거리에 질려 국호를 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