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왕(발해) (문단 편집) === 배경 === 698년 발해가 건국된 후 719년 고왕(대조영)이 붕어하고, 그 뒤를 이어 무왕(대무예)이 즉위했는데 [[연호]]를 인안(仁安)이라 하였다. 그리고 발해 주변에 위치한 여러 나라들에 대한 정복 사업을 벌였다. 당나라는 발해 건국 초기에는 동모산의 작은 세력이라 생각했는지 크게 경계하지 않고 먼저 사신을 파견해 발해를 회유했지만 무왕 대에 들어서 이러한 발해의 세력 확장이 꽤 거슬렸는지 슬슬 발해에 대해 견제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725년 당나라는 [[흑수말갈]]의 땅 즉 지금의 [[https://www.google.co.kr/maps/place/%EB%9F%AC%EC%8B%9C%EC%95%84+%ED%95%98%EB%B0%94%EB%A1%9C%EB%B8%8C%EC%8A%A4%ED%82%A4+%EB%B3%80%EA%B2%BD%EC%A3%BC+%ED%95%98%EB%B0%94%EB%A1%9C%ED%94%84%EC%8A%A4%ED%81%AC/@45.7637253,128.6616977,6z/data=!4m5!3m4!1s0x5efae9c6b0368ac9:0xfa97bc0e5fba7f50!8m2!3d48.5166043!4d135.098877!5m1!1e4?hl=ko|하바로프스크]]로 발해의 후방에 있던 곳에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하려고 했다. 당나라가 발해의 후방을 직접 통치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흑수말갈이 당나라의 관리를 요청하면서 이전까지 잘 해오던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방의 당나라와 후방의 흑수말갈이 정치적 결합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커져갔다. 발해는 앞뒤로 공격받게 생긴 셈. 50여 년 전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의 협공을 받아 멸망했기 때문에 당나라의 이러한 조치는 발해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 무왕은 아들이자 왕자인 [[대도리행]]을 당나라로 보내 당의 조치에 항의했다. 그러나 [[현종(당)|당현종]]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발해 무왕 대무예는 동생 대문예와 장인어른 임아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흑수말갈을 치도록 명했다. 당시 당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의 [[문명]]을 고루 흡수한 당대 최고 수준의 문화 및 과학 기술, 수많은 병사와 강력한 무기를 갖춘 강성한 세계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개원지치]]'''). 그리고 건국 초기 당나라에서 숙위로 8년 동안 머물렀던 [[대문예]]는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해 무왕이 대문예에게 당나라와 연합한 흑수말갈을 치라고 한 것이다. 대문예는 무왕의 명이 세계제국 당나라와의 전면전까지 갈 수 있는 국가존망이 걸린 일이라고 여겨 이 전쟁이 내키지 않았지만, 무왕은 그를 토벌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흑수말갈의 국경 지대에서 대문예는 형인 무왕 대무예에게 다시 한번 고구려도 당나라에게 망했는데 이건 아니다란 식으로 흑수말갈을 치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을 보냈고, 이에 무왕은 분노하며 대문예를 소환했다. 그러자 무왕에게 처벌받을까봐 두려워한 대문예는 군영을 탈출하여 당나라로 [[망명]]했다. 당현종은 대문예를 크게 환영하고 벼슬을 하사했다. 비슷한 720년대 후반 시기에 발해 부여부의 대수령 [[낙사계]]라는 인물이 당나라로 투항한 것을 그의 묘지명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대문예 외에도 전쟁 반대파가 있었고, 결국 일단의 반대파 무리들이 비슷한 시기에 축출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발해 무왕 대무예는 이에 격분했고 당나라에 사신을 급파해 당대 제국의 황제인 당현종에게 대문예를 [[처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현종은 무왕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문예를 피신시킨 후 멀리 귀양보냈다고 발해에 거짓 통보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현종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무예는 화가 폭발했고, 이후 당에 보낸 국서에는 파격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신생국 발해가 당대 동아시아 패권국이자 세계 최강의 대국 중 하나였던 당나라의 황제 현종을 신의가 없다고 직설적으로 꾸짖은 것'''. >'''대국은 신의를 보여야 하거늘, 어떻게 속일 수가 있소이까?''' >바라건대 예전의 청대로 그를 죽이시오! >---- > 《[[구당서]]》 이에 당현종도 역시 화는 났지만, 사실 무왕이 지적한데로 구라를 먼저 친 것도 당나라이고, 그렇다고 자기들 편들다 망명해온 대문예를 팽할 수도 없어 모양만 빠진 채 시간만 끌고 있었는데, [[7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와있던 발해 왕자 [[대도리행]]이 갑자기 죽는다. 무왕의 장자로, 발해-당의 외교 친선을 위해 노력하다 병으로 사망한다. 그러자 우유부단하던 당나라의 태도도 달라진다. 당현종은 왕위 계승 자격이 있는 대문예를 죽이라는 무왕의 요구를 거절하며, 아무리 그래도 친형이 친동생 죽이는 게 맞냐고 타이르는 동시에 더는 심기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협박성 신호도 보내며 무왕을 구슬린다. >경은 당나라의 은혜를 모르고 마침내 짐을 배반하려고 한다. >경이 믿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짐은 근래 관용을 품고 중원을 보살펴 왔으나 >경이 명을 받들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 발해의 차기 왕위계승자가 없는 상황에서, 동생 대문예를 왕으로 세울 수 있다는 암시를 한 것. 당현종의 협박인 셈. 이에 무왕은 분노했고 당나라를 먼저 침공하는 결단을 내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