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왕(발해) (문단 편집) == 기타 == * 행적에서 공격적이고 냉정한 [[성격]]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고구려]]의 [[대무신왕]]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임금]]으로 볼 수 있다. 대무신왕이나 발해 무왕이나 건국 초기 [[정복]] 군주라는 공통점에다 가까운 [[가족]]에게 냉정했고 모험적인 군사 활동을 벌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차가운 면모는 건국 초에 [[국가]]의 기틀을 잡아야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양. * 잃어버린 고구려의 고토를 좀 회복했으며 당시 [[강대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2차례에 걸쳐 크게 승리로 이끈 [[정복왕|정복 군주]]이자 [[명장]]이다. 2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크게 패한 당나라는 더이상 발해에 대해 침공이나 내정 간섭을 하지 못했으며 [[중국]] 본토를 두들겨 패고 [[아수라장]]을 만들었는데 한창 전성기라던 당나라가 제대로 대항을 못 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발해 [[역사]]상 최대 영토를 정복하여 발해를 해동성국으로 만든 [[선왕]]과 함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비교되는 편. *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조영의 기록 중 '고려구장'이라는 기록을 토대로 대조영이 고구려 시대 때 활동했던 장수였다면 발해 건국 당시 대조영은 최소 50대 정도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대무예 위에도 [[형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고구려부흥운동]] 과정에서 자식들이 모두 [[사망]]하면서 실질적인 장남이 대무예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발해 군주들 중 유일하게 [[무덤]]의 소재가 판명된 군주이며, 능호는 진릉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