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사시(전함) (문단 편집) === 침몰 === || [[파일:IuHgWRg-1.jpg|width=100%]] || || 선수부가 크게 가라앉은 채 회항중인 무사시[* 연돌에서 희미하게나마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때까진 기관이 완전히 정지하지는 않은 듯하고 화재도 모두 진화된 듯 하다. 카게로급 구축함 이소카제에서 촬영.] || 1944년 10월 24일, 무사시는 총 6번의 공습으로 인해 어뢰 20발, 폭탄 17발 혹은 어뢰 10발, 폭탄 16발에 피격되어 전투능력을 거의 대부분 상실하고 함수부가 좌현으로 크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중순양함 토네와 카게로급 구축함 이소카제, 하마카제의 호위를 받으며 6~7노트 가량의 속도로 가까운 해안으로 돌입하려 했다. 무사시의 지휘부와 수병들은 1차대전 중 발생한 유틀란트 해전 당시 함수가 대부분 물 속으로 가라앉은 상태에서도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항구로 돌아갈 수 있었던 독일제국 [[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 1번함 자이틀리츠를 상기하며 아직은 무사시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좌현 닻을 바다에 버리고, 기자재들과 부상자, 전사자들의 시신들까지도 함의 우현으로 옮기며 경사각을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7만톤이 넘는 거체를 일으키기는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결국, 침수로 인해 동력도 완전히 정지하며 무사시는 해상에서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부의 보일러실을 비롯한 함체 내부에서 침수로 인한 익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으며, 전기계통이 끊기며 해치가 작동하지 않아 격실 내부에 갇힌 승조원들을 천장에 구멍을 내서 구출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200mm의 두꺼운 장갑이었기 때문에 결국 모두 익사했다고 한다. 침몰 당시 무사시는 다수의 어뢰로 인해 약 35,000톤가량의 해수가 유입되어 부력을 거의 상실하였고, 복원력도 없어진 상태였다. 이후 함의 경사각이 12도에 달하게 되고, 경사각이 복구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7시 15분, 총원 퇴함준비명령이 하달되었고, 군함기가 마스트에서 내려졌다. 이후 7시 30분, 경사각이 30도에 달하게 되고 총원 퇴함명령이 내려졌으며, 7시 35분에 완전히 침몰했다. 이때 구축함 이소카제에서 촬영된 함수부가 크게 가라앉은 상태의 무사시의 사진은 무사시의 최후의 모습으로 유명하다. 무사시는 침몰 당시 수면 아래에 잠겨있던 좌현 함수부 방향부터 가라앉으며 전복되어 침몰했는데, 침몰하며 연돌을 통해 바닷물이 기관으로 유입되며 한 차례 증기폭발로 추정되는 폭발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함체 자체는 원형을 유지한 채 천천히 뒤집히며 가라앉았다고 한다. 다만 저 폭발이 함이 전복될 때의 충격으로 인해 탄약고가 유폭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무사시가 침몰할 당시 퇴함한 승조원들 중에 침몰 당시 일어난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거나 상술한 수중폭발로 인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함의 경사가 30도에 달하며 침몰이 확실시 되었을 때 호위중이던 구축함 두 척이 생존자 구조를 위해 접근했으나, 침몰로 인해 발생할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100m 정도까지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구축함들은 오전 1시까지 생존자 구출작업을 했으며, 약 1,350명을 구조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지상전에 동원되어 전사하는 바람에 수송선을 타고 귀국길에 오른 인원은 430명 정도였다. 거기에 이 수송선도 귀환 중 미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바람에, 최종적인 생존자는 수송선에서 구조된 120명과 지상전에 투입된 인원 중 살아남은 56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1번함인 야마토와는 달리 공습이 완전히 끝나고 전원 갑판에 집결한 상태에서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성공적으로 퇴함이 이뤄져서 함내 통신계통이 완전히 끊겨 승조원들 중 대다수가 퇴함명령이 내려졌음을 알지 못하였고, 알았다고 해도 탈출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에서 완전히 전복되며 탄약고가 폭발하여 3,000명 가량의 전사자가 발생한 야마토에 비해선 전사자가 적었다. 또한 이 때 무사시에는 구축함 아키시모에게서 인계받은 이전 팔라완 해협에서 미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타카오급 중순양함 마야의 생존자 769명도 탑승한 상태였는데, 이들 중에서도 마야의 부장을 포함한 134명 가량이 무사시가 침몰하며 전사하여 최종적으로 마야의 생존자는 635명이 되었다. 이들은 구축함 시마카제가 항구로 실어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