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사시(전함) (문단 편집) == 전반적인 함생 == || [[파일:파일_Musashi_battleship_in_1942.jpg|width=100%]] || [[파일:Yamamoto's_ashes_on_Musashi.jpg|width=100%]] || || 전함 무사시의 함수에서 함교 부분을 바라본 모습[* 건조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측에 대공화기 대신 155 mm 부포탑이 설치되어 있다.] ||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유골을 일본으로 운구해온 전함 무사시 || 1943년 전함 야마토와 연합함대 기함임무를 교대해 연합함대의 기함이 되어 트럭 환초에 배치되었다. 이때 부건빌 섬 상공에서 격추되어 전사한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유골을 사령장관실에 안치하여 일본까지 운구하였다.[* 현측의 부포탑을 철거했으며 그 자리엔 흰 천막같은 구조물로 덮어놓은 상태이다.] || [[파일:musashi_1979a6.jpg|width=100%]] || [[파일:iZMYWCM-1.jpg|width=100%]] || || 건조 이후 쇼와 덴노가 함에 방문하여 지휘부 인원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 트루크 제도에서 야마토와 함께 정박한 무사시[* 앞쪽에 흰 천막 같은 것이 설치된 함선이 무사시다.] || 7월 31일에 무사시는 일본을 떠나, 8월 5일에 다시 트럭 환초에 도착하여 훈련을 계속하였다. 다음 해인 1944년 2월 10일에 트럭 정박지를 떠나, 15일에 요코스카로 귀환했다. 무사시가 트럭 정박지를 떠난지 불과 며칠 뒤에 트럭 환초에 미해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가해져서 정박지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므로, 일본해군은 서쪽 캐롤라인 제도의 팔라우로 근거지를 이동하였다. 무사시는 육군 상륙 부대와 5,000톤 가까이 되는 대량의 물자를 실은 채 24일에 요코스카를 떠나 29일에 팔라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3월 29일, 팔라우에서 머물고 있던 미군과 대치하여 연합함대 사령부를 육상으로 옮기기 위해 잠시동안 환초에서 나와 경계행동을 취하고 있던 중 미 잠수함 튜니가 발사한 어뢰를 맞고 함수부가 손상, 2,600톤 가까이 침수되어 전사자 7명, 부상자 11명이 나왔다. 그 이후 야마토, 나가토와 함께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하였지만 미군 함대나 함재기들과의 접촉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